[라파즈]
버스에서 만난 귀여운 불청객
오늘의 일정은 이동이다. 우유니에서 오루로, 그리고 다시 오루로에서 라파즈까지 하루종일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날이라서 아침 일찍 우유니를 떠나야 했다. 아직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울 우유니 소금 사막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달콤한 꿈에 취한 채 여행사 거리를 지나가는 길에 우리의 가이드였던 조메르(romer)와 우연히 만났다. 동시에 서로를 알아보고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이제 라파즈로 떠나요, 투어 고마웠어요!”라고 말하니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던 그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짧았던 만남의 순간 덕분에 우유니의 마지막을 기분 좋게 장식했다.
아니 이게 뭐지..? 분명히 세미 까사 버스로 예약했는데, 탑승하고 보니 일반 버스였다. 버스 회사에 된통 속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오루로까지 안전하게 갈 수만 있으면 됐지.. 하지만 좌석과 통로는 아주 지저분했고, 버스 천장 창문으로 모래먼지가 계속 들어와서 코가 간지러웠다. 마스크를 착용한 덕분에 숨쉬기가 조금이나마 편했다. 마스크가 없었다면 몇 시간 동안 먼지에 시달렸을 게 분명했다.
버스가 막 출발하자, 귀여운 볼리비아 꼬마 남매가 우리에게 접근했다. 처음에는 우리도 반가운 마음에 인사도 나누고, 스마트폰도 보여주며 재미있게 놀았다. 하지만 우리는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셈이었다. 아이들의 체력이 어찌나 좋던지 2시간, 3시간이 지나도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심지어 자고 있는 우리를 깨우기까지 했다. 볼리비아말은 할 수 없으니 자리로 돌아가라고 손짓까지 했지만, 아이들은 돌아가는 시늉만 하고 다시 와서 놀기를 반복했다. 아이들의 어머니는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고 웃으면서 그 모습을 보고만 계셨다. 그러다 지쳤는지 자리로 돌아가 잠들었다. 역시 아이들은 자고 있을 때 가장 예쁘다.
오루로에 도착해서 라파즈행 버스를 예매했다. 오루로 버스터미널은 지금까지 남미 여행을 하면서 방문한 버스터미널 중 가장 넓고 시설이 깨끗했다. 오루로는 볼리비아의 여러 지역에서 모이는 환승 센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 예매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었고, 각종 편의시설도 제법 많고 치안도 좋은 편이었다. 매점에서 허기를 채울 빵과 콜라를 사고 버스에 올랐다.
터미널에서 재미있는 일을 경험했는데, 탑승 게이트로 지나갈 때 1인당 2볼씩 환경세를 지불해야 했다. 돈을 지불하고 나서 작은 종이 한 장을 받았는데, 환경세를 납부했다는 일종의 확인증이었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배낭여행자 입장에서 이렇게 나가는 작은 돈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나라 정책이 그렇다는데, 따라야지 뭐..
우유니-오루로 버스는 일반 좌석 버스였다면, 오루로-라파즈 버스는 URUS회사의 까사 버스를 탔다. 나스카에서 아레키파로 이동할 때 이용했던 크루즈 델 수르 버스와 유사하게 좌석은 리클라이너 의자였고, 우리나라 고속버스 우등석보다 좌석이 넓고 쾌적해서 침대 부럽지 않은 아늑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우리를 괴롭히는 꼬마 남매도 없어서 라파즈까지 편안하게 이동했다.
마침내 라파즈에 도착했다. 이동하는 데만 8시간 30분이 걸렸다. 남미에서 이 정도 이동 시간은 오래 걸리는 편도 아니었지만, 온종일 차에 앉아 있었던 탓에 진이 다 빠졌다.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고 짐을 챙겨 버스에서 내렸다. 우유니에서 오루로까지 4시간 20분, 오루로에서 라파즈까지 3시간 30분, 그리고 라파즈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택시 타고 40분 정도 소요됐다.
라파즈에 돌아왔다! 그런데…
라파즈에 다시 돌아왔다. 한번 와본 곳이라서 그런건지, 라파즈의 바람이 우리를 반겨주는 듯 했다. 그리고 저녁 하늘은 아직 밝아서 이유 모를 평화로움도 느낄 수 있었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지만, 퇴근시간대라서 교통체증이 아주 심해서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다. 러시아워에 차 막히는 건 만국 공통인가보다.
숙소 위치는 처음 라파즈에 머물렀을 때 묵었던 숙소 맞은편에 있는 라스 브리사스 호텔이었다. 호텔 로비에서 숙소 예약 확인을 보여주기 위해 에어비앤비를 접속하려는데,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다. 직원이 말하기를, 지난밤 비가 많이 내려 통신국의 안테나에 문제가 발생했고, 이것 때문에 와이파이가 먹통이 됐다고 했다. 나스카에서는 도시 전체가 정전되더니 이젠 와이파이까지 말썽이라니… 처음 라파즈에 머물렀을 때 하늘이 흐리고 소나기가 내렸는데, 우리가 우유니에 있는 동안 쭉 비가 내렸던 모양이다. 서류 몇 장 간단히 작성하고 확인 과정을 거친 후에 배정받은 숙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맞은편에 있는 모짜렐라 피자로 달려갔다.
다시 찾은 모짜렐라 피자
이번에도 1인 1피자를 주문했다. 우리가 주문한 피자는 맞춤 주문 피자 (햄 페퍼로니, 토마토, 버섯, 양파, 할라피뇨) / 맞춤 주문 피자 (베이컨, 페퍼로니, 토마토, 할라피뇨, 양파) / 나초피자 (과카몰리, 나초) / 4가지 치즈가 들어간 피자. 모든 피자를 화덕에 굽기 때문에 피자가 완성되기까지 오래 걸렸다. 게다가 지역 맛집인지 포장해 가는 손님들이 많아서 꽤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하지마 이미 그 맛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마저 설렜다. 피자는 정말 맛있었다. 화덕피자의 참맛을 볼리비아에서 알게 됐다. 누군가 라파즈에 온다면 꼭 모짜렐라 피자를 먹으라고 추천하고 싶다. 아니..어쩌면 모짜렐라 피자를 먹기 위해 라파즈에 들러도 좋을 만큼 맛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최고의 피자였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니 빗줄기가 점차 거세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라파즈의 야경을 보겠다는 일념 하에 케이블카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가로등이 비추는 빛이 시원치 않아 거리는 다소 어두웠지만, 아직은 사람들이 많아 거리에는 생기가 돌았다.
야경을 본다는 생각에 너무 들뜬 나머지, 케이블카를 잘못 탔다. El Alto는 레드(red) 라인인데, 우리는 오렌지(Orange) 라인을 탔던 것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마자 직원에게 다짜고짜 “엘 알토? 엘 알토?” 라고 말하니, 여기는 아니라고 손짓하며 우리에게 정확한 길을 알려줬다. 젊은 아시아인 4명이 밑도 끝도 없이 엘 알토라고 말하는데, 직원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처음에 케이블카를 탔던 정류장으로 돌아간 후 레드라인으로 갈아타 El Alto까지 올라갔다. 정상에 가까워지자 라파즈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라파즈 첫 숙소였던 사마하 호텔 옥상에서 본 야경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발 아래로 촘촘하게 박힌 주황불빛들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케이블카에서 보는 야경이 명물인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치 느린 속도로 야간비행을 하듯 빛으로 가득한 도심의 밤을 음미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엘 알토 전망대로 이동했지만, 그동안 내린 비로 인해 전망대 유리 칸막이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고, 야경을 온전히 감상하긴 어려웠다. 대신 엘 알토 조형물과 야경을 배경 삼아 사진을 남겼다. 그래도 라파즈 야경과 구름 뒤로 밝게 뜬 보름달은 장관을 이루었고, 여전히 아름다웠다.
케이블카가 있는 건물에 대형 마트가 있어서 그곳에서 맥주 몇 캔을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불과 2시간 만에 거리는 삭막해졌다. 생기는 온 데 간 데 없었고,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성인 남성 4명이 뭉쳐서 이동했음에도 괜스레 발걸음이 빨라졌다. 라파즈의 밤은 밤산책을 하기에 좋은 동네는 아니었다. 내일은 이른 아침부터 홉버스를 타고 코파카바나로 이동해야 했기에 간단하게 맥주 마시고 잤다.
오늘의 가계부
오루로 버스터미널 화장실 이용 4볼 (1인당 1볼*4)
오루로~라파즈 버스 120볼
버스터미널 환경세 8볼 (1인당 2볼*4)
택시 (라파즈 버스터미널~숙소) 20볼
라스 브리사스 숙소 480볼
모짜렐라 피자 167볼
케이블카 24볼, 12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