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파카바나]
태양의 섬 트래킹
벤치에 앉아 과일 주스를 홀짝이며 호숫가를 감상했다. 호숫가를 따라 즐비해 있는 미니보트들은 이곳이 성수기에는 레크리에이션 명소라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방치된 상태나 다름 없었지만. 그러다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포장마차 상인들은 그 많은 송어를 어디에서 구해오는 걸까? 송어 양식장이라던가 공판장 같은 곳은 보이지 않았다. 코파카바나 지역에서 호숫가와 맞닿아 있는 곳이 여기 말고 다른 곳이 더 있는건가? 뭐 이곳이 아니어도 티티카카호수는 넓으니 인근 지역에서 공수해 올 수도 있겠다. 해답을 찾지 못했지만, 트루차를 맛있게 먹었으니 아무렴 상관없었다.
홉버스 패키지 상품으로 신청한 태양의 섬 투어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배를 타고 티티카카 호수를 건너 태양의 섬으로 이동했다. 가까이서 보니 역시나 바다처럼 보였다. 아주 깊을 것만 같은 그런 바다의 색을 띠고 있었다. ‘이곳은 얼마나 깊을까? 빠지면 무섭겠지?’ 바다나 호수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하곤 하는데, 티티카카호수를 보고도 떠올랐다. 귀중품을 빠뜨리면 십중팔구 찾지 못할 게 분명했고, 소지품을 담은 가방의 지퍼를 꽉 조여 맸다.
호수를 감상하기 위해 부푼 마음을 품고 2층으로 올라갔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청량한 호수의 색감을 실컷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설렘도 오래 가지 못했다. 호수의 찬바람이 어찌나 매섭던지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한낮이었음에도 은근 추웠다. 객실 안으로 내려갈 수도 있었지만, 왠지 오기가 생겨 내려가고 싶진 않았다. 태양의 섬은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었고, 온몸으로 맞은 호수 바람은 정말 차가웠다. 넓고 푸르른 호수 위를 한참 이동한 끝에 섬이 보였고, 마침내 태양의 섬에 도착했다.
태양의 섬이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볼 만한 콘텐츠는 딱히 없었다. 왜 태양의 섬인지, 이곳의 명물은 무엇인지 알려주는 안내문이 있을 법한 이름을 지녔지만, 우리가 내린 선착장에서는 안내문 비슷한 것도 볼 수 없었다. 우리가 할 일은 앞으로 걷는 것뿐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40분, 시간 내에 건너편 선착장까지 도착하지 못하면, 영락없이 이 섬에서 묵어야 했기에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그래도 산중턱에 이르자 호수와 태양의 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트래킹을 하기엔 좋은 지형의 섬이었다. 계단식 지형과 듬성듬성 자라나 있는 수풀은 의도적으로 조성한 것처럼 깔끔한 게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다. 잠시 감상하고 다시 걸어야 했다.
트래킹 중간마다 팔찌나 장신구, 장난감 등 기념품을 판매하는 할머니들와 아이들을 마주치기도 했다. 민가에 가까워지자 풀을 뜯는 노새도 보였다. 트래킹을 마치고 선착장 인근에 있던 동상과 사진 한 컷 남기고 내려갔다. 동상의 주인공이 들고 있는 지팡이와 가슴 한 가운데에 박힌 태양 문양을 통해 그가 태양신이거나 이곳 주민들이 태양신을 숭배한다는 정보를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트래킹을 끝나고 바로 배에 탑승한 후 코파카바나로 돌아왔다. 태양의 섬을 둘러보는 것보다 코파카바나에서 섬으로 왕복 이동하는 게 더 오래 걸렸다. 돌아오는 길에 찬바람을 맞은 탓에 피로가 올라와 잠을 좀 청하려는데, 외국인 여성 무리가 신경이 거슬릴 정도로 시끄럽게 떠드는 통에 영 편하지 않았다.
공포의 아시안 레스토랑
저녁 먹으러 시내로 내려왔다.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아시안 레스토랑이 눈에 들어왔고, 우리는 호기심이 생겨 식당으로 들어갔다. 내부에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아시안 여행객 한 팀이 식사하고 있었다. 송어초밥, 알파카 꼬치구이를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을 보고 얼마 동안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초밥을 시켰는데, 이게 초밥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비주얼이었다. 밥을 감싼 회는 신선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식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얇게 저며진 채 밥을 감싸고 있었다. 와사비로 보이는 초록빛 소스는 너무 묽었고, 미묘한 맛이 났다. 와사비의 매운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는 그런 맛이었다. 알파카 꼬치 구이는 평범한 수준보다 조금 못한 맛이었다. 전반적으로 음식 솜씨가 부족한 식당이었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웬만하면 대부분 잘 먹는 나조차도 이곳 음식은 먹기가 쉽지 않았다. 이건 음식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만큼 저급했다. 남미여행을 하면서 먹었던 음식 중 가장 최악의 음식이었다.
실망감과 허탈함을 달래고자 곧장 트루차 12번 포차로 향했다. 따스한 불빛과 고소한 기름 냄새가 우리를 반겨주는 듯 했다. “그래, 이거지!” 따끈따끈한 트루차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트루차와 맥주를 먹으며 아시안 레스토랑에서 버린 입맛과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터덜터덜 걸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쏟아져 내렸다. 별을 감상하면서 온 덕분에 가파른 오르막길과 으슥한 골목길을 걸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늘의 가계부
코파카바나 숙소 455볼
12번 포차 트루차 점심식사 100볼
과일 음료 10볼
태양의 섬 화장실 이용 8볼
끔찍한 아시안 레스토랑 197볼
12번 포차 트루차 저녁식사 97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