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파카바나]
코파카바나 시내 구경 후 트루차 또 먹기
모처럼 숙소에서 푹 쉬고, 느지막이 나왔다. 체크아웃은 했지만, 홉버스 일정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기도 했고, 아직 둘러보지 못한 곳이 있어서 짐은 맡겨 두고 중심가로 내려왔다. 어제 시내를 둘러보다가 발견한 대성당 내부를 관람하러 들어갔지만, 미사가 진행 중이어서 성당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일반적인 성당 건축물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여러가지 요소를 곁들인 ‘코파카바나 스타일’로 지어진 성당 건축물만 실컷 구경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랠 겸 솜사탕 먹으며 건물 외관을 감상하고 바로 앞 광장 벤치에 앉아 잠시나마 여유를 즐겼다.
시장을 구경하다가 과일주스를 파는 상점 앞에 멈춰 섰다. 이곳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큼지막한 생과일을 슥슥 잘라 믹서기에 넣고 갈아 줬다. 한잔 다 마셨더니 믹서기에 남은 음료를 마저 따라줬다. 아레키파에서 S와 B가 신선한 문화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넉넉한 인심에 한번 반하고, 신선한 주스에 한번 더 반했다. 생과일에 설탕 듬뿍 넣고 갈아 만든 주스를 마신 덕분에 몸에서 힘이 솟아났다. 이게 바로 진짜 생과일 주스지.
힘찬 발걸음으로 향한 곳은 트루차 12번 포차. 코파카바나에 온 이후로 매 끼니 트루차를 먹었지만, 여전히 먹고 싶기도 했고, 이곳을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인 만큼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싶었다. 갈릭 트루차 2개와 로마나 트루차를 주문했다. 로마나 트루차는 토마토소스가 얹어져 있는데, 이 또한 정말 맛있었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생선구이인데, 맛있는 생선에 맛있는 토마토소스를 올린다면? 아주 맛있는 메뉴가 되는 거다. 세 번째 먹는 것이었지만, 우리는 트루차에 매료되어 부지런히 젓가락질을 했다. 정말 원 없이 트루차를 먹었다. 이제 한동안 생선구이가 그립진 않을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호숫가 앞 동상에서 사진을 찍었다. 태양의 신과 달의 여신을 형상화한 동상인 듯 보였다. 이것은 마치 볼리비아판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아닌가? 호랑이도 맨손으로 때려잡을 법한 건장한 체구와 우락부락한 근육이 인상적이었다. 동상 너머로 보이는 탁 트인 호수와 하늘 위에 떠 있는 흰 구름이 아름다워 동상을 배경 삼아 사진을 남겼다.
코라존 데 헤수스로 가기 위해 이동했다. 입구에 가까워지자, 저 아래 시장에서 지역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제법 규모가 큰 축제처럼 보여서 산에서 내려온 다음 방문하기로 하고 길을 계속 올라갔다.
코라존 데 헤수스(Corazon de Jesus)
코라존 데 헤수스 입구에 들어서자 끝이 보이지 않는 돌계단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계단 높이가 높아서 힘든 것도 있지만, 코파카바나 또한 고산지대였기에 틈틈이 휴식을 취하며 올라가야 했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경사가 심해져서 산을 오르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비니쿤카를 다녀온 덕분에 고산병으로 인한 지끈거림은 없었지만, 호흡은 금방 거칠어졌다. 올라가는 길 곳곳에 예수의 기적과 고난을 상징하는 비석들이 있었고, 마치 퀘스트를 차근차근 깨며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기분으로 산을 오를 수 있었다. 게다가 험난한 등산을 통해 예수님이 겪은 고난을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스페인어로 적혀 있어 자세한 내용을 읽을 순 없었지만, 신학에 대해 배운 S와 성당을 다니는 K가 그림을 보고 유추하며 설명을 통해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고, B의 참신한 해석이 더해져 올라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비석들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어느덧 정상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비석에 새겨진 그림의 마지막 장이 보였고, 코라존 데 헤수스를 설명하는 비석, 작은 성모상을 간직한 커다란 예수상이 있었다.
동상 뒤편으로 작은 길이 있었는데, 그 일대에는 곳곳에 자리 잡은 행상들이 초, 폭죽, 맥주, 각종 주전부리 등 각종 물건을 판매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모여서 폭죽을 터뜨리거나 작은 초를 켜고 기도도 하며,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일종의 의식을 행하는 듯 보였는데, 연초에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겠거니 생각하고 주변 풍광을 감상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니 코파카바나 시내와 티티카카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누가 봐도 포토존임을 알 수 있는 장소도 보였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우리도 그곳에서 코파카바나를 배경삼아 사진을 남겼다.
코파카바나가 배산임수의 올바른 표본임을 알 수 있었다. 마을 지역 앞에는 티티카카호수,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산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하늘보다 푸르른 티티카카 호수와 그 위에 박혀 있는 흰 요트들, 코파카바나 시내를 둘러싼 산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호수는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저 멀리까지 펼쳐져 있어 아무리 둘러봐도 바다처럼 보였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살구색 건축물들은 정교하게 만들어 낸 레고를 떠올리게 했다.
정상에서 구경을 마치고 내려와 입구에 가까워질 때 쯤 푸근한 인상의 중년 아저씨께서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셨다. 우리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흔쾌히 수락했는데, 이게 웬걸..! 주변에 앉아 있던 아저씨의 일가족이 우르르 나오더니 급기야 단체 사진을 찍게 되었다. 어림 잡아 열 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벌어져 얼떨떨하기도 하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니, 온가족이 모여 사진을 찍을 만큼 젊은 한국인 4명이 의미하는 바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주 잠시 동안 연예인의 기분을 만끽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사진을 찍었다. 솔직히 기분은 정말 좋았다! 아쉽게도 아저씨의 핸드폰으로 단체 사진을 남겨서 우리에겐 그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도 간직하고 계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