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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J Jul 23. 2021

1-1. 페루의 수도, 리마 둘러보기

[리마]

리마 미라플로레스의 첫인상


시차적응에 실패한 탓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남미에 왔다는 사실에 한껏 들뜬 덕분인지 그다지 피곤함을 느끼진 못했다. 창 밖은 날이 밝아왔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더는 잠들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서 K와 함께 동네를 둘러볼 겸 산책하러 나갔다. 활동하기에 이른 시각이라 동네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건물마다 밝은 톤의 단색으로 칠해져 있어 경쾌하고 아기자기하니 아름다웠으며, 신식 건축물 특유의 세련미가 돋보였다.



숙소에서 10분 정도 걷다 보니 해안가가 눈에 들어왔다. 해안도로 아래로 가파른 절벽이 이어졌고, 그 아래로 또 다른 해안도로가 있었고, 그 너머에 해변과 바다가 펼쳐졌다. 해안도로를 따라 조금만 걸어가니 멀티플렉스도 보였다. 우리 숙소가 위치한 미라플로레스는 리마 신시가지라서 각종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생활 수준이 다른 지역보다 높은 편이라고 한다. 반려동물과 산책하는 사람도 보였고, 러닝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는데, 이른 시간부터 자기 관리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부촌 느낌이 물씬 나는 동네다. 우리나라로 치면 성북동, 서래마을, 광안리의 모습을 한 데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조식은 호스트께서 한식을 차려 주셨다. 고슬고슬한 흰 쌀밥, 김치찌개, 김치, 깻잎 장아찌, 어묵볶음. 여행 첫 날부터 고난의 연속을 거쳐 왔던 우리를 어루만져주는 듯한 따스함이 느껴졌다. 게다가 반찬들은 전부 밥도둑 메뉴로 이루어져 있어서 밥맛이 아주 꿀맛이었다. 본격적인 여행을 앞두고 배를 든든하게 채우는 데는 역시 한식만 한 게 없다. 맛있게 먹고 환전하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미라플로레스 둘러보기



환전소 머니그램으로 이동했다. 많은 환전소 중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 환전소보다 안전하고, 환율도 괜찮은 선에서 환전할 수 있다는 구르메 한인민박 직원의 추천을 받았기 때문이다. 환전소 내부는 말그대로 철통보안이었다. 환전 창구는 강화유리로 덮여 있었고, 작은 구멍 하나로 건너편 직원과 돈을 주고받았다. 아무래도 돈을 다루는 장소인 만큼 보안에 신경 쓰는 건 당연하지만, 이토록 보안이 철저한 탓에 오히려 동네 치안이 좋지 못하다는 인식이 생겼다.


환전을 마치고, 케네디 파크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까지 거리가 좀 있는 편이긴 했으나 이 일대가 온통 알록달록 파스텔톤으로 꾸며진 주택들이 들어서 있어 동네 구경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하지만 쇠창살이 담장 위로 날카롭게 솟아 있어 제법 삼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건물을 화려하게 꾸며놨지만 아직 치안이 그리 좋지만은 않은 듯 했다. 대로변으로 나오자 작은 풋살장과 큰 규모의 스포츠센터가 보였는데,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임에도, 센터 내부에는 운동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 사람들은 대체 언제 일하러 가는 걸까? 이 시간에 일 안하고 운동할 정도면 얼마나 부자인 걸까?” 우리끼리 시시콜콜한 문답을 주고받으며 이동했다.


이번에도 구르메 한민민박 직원의 추천을 받아 이카행 버스표를 구매하기 위해 케네디 파크 인근 마트 내부에 있는 버스표 구매처로 향했다. 티켓 부스 직원에게 영어로 물어봤으나 직원은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영어를 하지 못한다고 손짓했다. 이를 어쩐다.. 난감한 상황에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젊은 대머리 남성이 흔쾌히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우리는 그에게 이카행 버스 티켓을 사고 싶다고 말했고, 그 남성은 스페인어로 직원에게 통역하는 식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버스표 구매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우리 일행은 친절한 그 남성과 직원에게 고맙다고 인사했고, 그들도 우리를 향해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해주었다.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본격적인 여행을 하기 전부터 기분이 좋았다.


버스표 구매를 마치고 바로 앞에 있는 케네디 파크에 도착했다. 이곳은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어 리마 사람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공원 도처에 고양이들도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왜 이곳을 고양이 공원이라고 부르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 나른하게 누워 있는 고양이들, 주변을 서성거리는 고양이들이 꽤나 귀여워 한동안 그 모습을 감상하며 공원을 거닐었다. 



공원에 성당이 있었지만, 내부만 간단하게 관람하고 바로 옆에 있는 시청에서 와이파이를 잡아 우버 택시를 불렀다. 우버 택시는 일반 택시에 비해 조금 비싸지만, 거리 비례 요금제 덕분에 흥정하느라 힘을 빼지 않아서 좋았고, 안전지향적인 여행을 추구하는 우리에겐 안성맞춤이었다. 우리의 행선지는 리마 구시가지. 리마 대성당, 대통령궁처럼 주요 관광명소가 모여 있는 곳인데, 케네디 파크에서 차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해야 했다. 택시가 자동차 전용 도로를 따라 구시가지를 향해 이동하자, 주변 풍경이 급격하게 달라졌다. 깔끔하고 세련된 건물들이 보이던 풍경은 채색이 덜 되어 있어 칙칙함이 묻어나는 건물들로 바뀌었다. 도로에는 차량이 얼마나 많던지, 출근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각임에도 교통 체증이 정말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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