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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J Jul 26. 2021

2-2. 오아시스를 품은 사막의 낙원

[와카치나]

바나나호스텔은 휴양지 속 작은 휴양지를 떠올리게 했고, 의외로 많은 한국인이 찾는 숙박업소 중 하나다. 호스텔 중앙에 바(bar)가 있고, 그 주변으로 테이블과 의자, 해먹이 설치되어 있어 편히 쉴 수 있었다. 작은 풀장에서 투숙객들이 유유자적 쉬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 숙소는 2층 침대 2개와 사물함만 들어 있는 아담한 4인용 도미토리였다, 잠만 잘 수 있을 만큼 정말 작았고, 화장실이나 샤워실은 외부 공용공간을 이용해야 했지만, 우리는 크게 불평하지 않았다. 군대를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우리들에게 두 다리 뻗고 잠만 잘 수 있으면 충분했다. 


주변을 둘러볼 겸 산책하러 나갔다가 근처 상점에 방문한 우리는 주인아저씨로부터 세탁 서비스 이용 방법과 해가 저물고 있으니 사막 산에 올라 일몰을 감상하라는 정보도 얻었다. 하늘을 보니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했다. 부리나케 숙소에 돌아가 선크림을 곳곳에 잘 바른 다음 선글라스를 챙겨 쓰고, 사막 산을 향해 서둘러 이동했다.





오아시스를 품은 와카치나


웅장한 사막 산을 봤을 때부터 설렜는데, 가까이서 마주하니 더 설렜다. 첫발을 내딛자 부드러운 모래 알갱이들이 발을 감쌌고, 온몸이 짜릿했다. 사막 모래를 온전히 느끼고 싶어서 샌들을 벗어 손에 들고 맨발로 걸어 올라갔다. 모래의 감촉은 해수욕장 모래보다 더 곱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발이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는 바람에 몇 발자국 걷지도 않았는데도 금방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체력 소모가 심했지만, 신나는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사막 산 중간쯤에 다다르자 와카치나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왜 와카치나를 오아시스를 품은 마을이라고 부르는지 단번에 이해됐다. S와 B는 중간지점에서 쉬면서 풍경을 감상하기로 했고, 나와 K는 정상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사막 속 와카치나
위에서 내려다 본 와카치나
사막 산 중턱을 향해 오르는 중


정상까지 가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경사가 더 심했고 모래언덕은 좀처럼 발을 놔주려고 하지 않아 무척이나 힘들었다. 이미 중간지점까지 올라오는 데도 많은 체력을 소모했지만, 정상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을 눈에 담겠다는 일념 하에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꿋꿋하게 걸어 올라갔다.


가파른 경사가 느껴지는가? 저 위가 정상


정상에 다다르자 눈앞에 광활한 사막이 펼쳐졌다. 눈에 들어오는 건 구름과 모래뿐이었다. 넓은 바다에 출렁이는 파도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굴곡진 모래 언덕의 연속이었다. 하늘은 노을의 막바지에 이르러 붉고 흰 구름이 뒤엉켜 있었다. 구름이 태양을 가려 선명한 일몰을 감상하긴 어려웠지만, 구름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노을을 사막 산 정상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드넓게 이어진 사막 산맥에 압도되어 왠지 모르게 숙연해졌다. 광활한 사막에 비하면 나라는 존재는 내가 밟고 서 있는 모래알갱이만큼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나 높았는지 중간지점에 있는 친구들은 잘 보이지 않았고, 와카치나 마을도 미니 사이즈로 보였다. 넓게 펼쳐진 사막 반대편으로 이카 시내의 불빛이 밝게 빛났다. 모래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넋을 놓고 풍경을 감상했다. 날이 저물자 저녁 바람이 제법 쌀쌀해졌다.


사막 산 정상 풍경


사막 산은 내려오는 것도 만만치 않았는데 다리와 배에 힘을 준 상태로 천천히 내려가야 했다. 굴러서 편하게 내려가고 싶었지만, 식사 전에 모래를 먹긴 싫어서 꾹 참고 내려갔다. 중간 지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과 합류해 숙소로 돌아갔다. 사막 산을 오르락 내리락 했더니 무진장 배가 고팠다.



바나나호스텔에서 저녁식사, 그리고 정체불명의 안티쿠초


샤워하기 전 옷을 벗자 바지 주머니에서 모래가 우수수 쏟아졌다. 심지어 핸드폰 케이스 틈새, 안경과 렌즈 틈새까지, 틈이란 틈에는 곱디 고운 모래 알갱이가 침투해 있었다. 행여 흠집이라도 날까 조심스럽게 입으로 후후 불어 모래를 털어냈다. 쏟아져 나온 모래알은 사막에서 느꼈던 즐거움에 비례했다.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 미리 신청해 둔 바비큐를 먹었다. 닭고기와 돼지고기 바비큐, 버팔로윙을 받았고, 샐러드바를 이용해 채소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중앙에 있는 바에서 고기와 함께 마실 맥주를 구매한 후 만찬을 즐겼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바 앞에 자리 잡고 칵테일을 주문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칵테일은 15솔인데다 700ml가 넘는 유리컵에 담아주었기에 양이 많아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맛이 달달해서 신나게 홀짝홀짝 마시다보니 취기가 훅 올라왔다. 주스처럼 달콤했지만 역시 술은 술이었다. 현란한 바텐더의 손놀림을 관람하는 것도 소소한 이벤트 중 하나였다.

저녁식사
칵테일 마추픽추!  빨노초 그라데이션이 매력적, 맛도 인상적
칵테일을 원없이 마셨다.                                


빨래를 맡기러 숙소 밖으로 나섰다. 앞서 상점 아저씨에게 입수한 정보를 따라 빨래방으로 가서 빨래감을 맡기고 결제를 했다. 빨래방에 계신 주인 할머니는 영어를 할 줄 모르셨고, 스페인어를 조금 배운 K의 어휘력과 우리들의 현란한 바디랭귀지를 통해 어렵게 결제를 마쳤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 꼬치 가게를 발견했다. 맥주와 함께 먹을 꼬치를 사러 홀린 듯 걸어갔다. 안티쿠초와 소시지, 돼지 위 등 여러 종류를 팔고 있었고, 우리는 10솔 어치를 구매했다. 주인장은 고양이 고기라고 농담을 던졌다. K가 듣고 고양이가 맞냐고 물어보며 고양이 울음소리를 냈는데, 주인은 어떻게 알아들었냐는 표정으로 놀라는 듯 했다. 숙소로 돌아와 꼬치를 자세히 보니 외관이 독특했다. 혈관 다발처럼 보이는 게 삐죽 튀어나와 있었고, 식감은 조개구이를 먹는 듯한 부드러웠다. 이게 과연 진짜 안티쿠초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의심도 잠시 맥주 안주로 제 격이었고, 맛있게 먹었다. 디저트는 푸짐한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했다. 말랑말랑한 휴양지 분위기 속에서 알차게 즐긴 하루였다.

꼬치구이 모듬
푸짐한 아이스크림






오늘의 가계부


우버택시 (리마 구르메민박~크루즈 델 수르 버스터미널) 18솔

버스터미널 음료수 12솔

버스터미널 빵 41.5솔

바나나호스텔 655.4솔

모기약 22솔

맥주 39솔

바나나호스텔 칵테일 50솔 + 60솔

길거리 포장마차 꼬치 10솔

아이스크림 15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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