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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v양쌤 Nov 12. 2023

오줌, 그리고 무책임

에세이



뚝--뚝-- 뚝--뚝

짝꿍이 뭐냐며 작은 소리와 손짓으로 물어본다.

"나도 몰라"라고 작은 소리와 어깻짓으로 대답한다.

뒤 친구가 또 물어본다.

난 물이 떨어지는 거라고 대답한다.

아 어떡하지? 이 사고를 어떻게 수습하지? 속이 탄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인정하면 평생 놀림거리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 무조건 우겨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2학년 3반 50명 모두 책상 위에 올라가서 무릎 꿇고 의자를 들고 벌서고 있는 중이었다. 무서워서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은 엄두도 안 났다. 초등학생인 나는 그 당시 치마에 하얀 스타킹을 신었다. 벌서는 중에 참을 수 없어 실례를 하고 만 것이다. 뜨끈한 물은 하얀 스타킹을 타고 흘러 무릎 꿇고 있는 책상에서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양손은 의자를 들고 머리 위로 쭉 뻗고 있었다.


벌 받는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렀다. 걷기도 불편했다. 특별히 나를 불렀던 적이 없었기에 벌 받다 실례한 것에 대해 말할 줄 알았는데 목적은 출석표를 다른 반에 갖다 주는 심부름을 시킨 것이었다. 찝찝하게 젖은 스타킹으로 계단과 복도를 오르내려야 했다. 시간이 지난 상태라 지린내도 심했을 것이다.


담임쌤은 아이들 벌을 주면서 내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분명 알 것이다. 하지만 불러서 아무 말도 안 하셨다. 꼭 나를 불러 심부름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시켰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드는 생각은 상황파악을 위해서 불렀을 것이고 상황파악 후 아이의 마음이 어떤지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어른, 어른인데 어떻게 자신의 제자에게 무책임할 수가 있을까? 당시 그분의 인성은 어떤 상태였을까? 지금껏 담임으로 거쳐간 모든 사람들 중 기억에 남거나 정말 좋은 분이셨지, 하고 기억에 남는 분은 없다. 선생님복이 없었는지 모르지만 커서 생각하니 오히려 실망을 한 기억이 더 많았다.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학부모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도 그런 수치스러운 장면은 어제 겪은 듯 생생하다. 늙어 눈이 뿌옇게 되어도 그 장면만은 선명할 것이다. 실망을 안겨준 선생님들의 반복 경험이 장기기억 장치에 저장되었다. 그렇게 학부모가 되고 보니 요즘 선생님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혹시나 내 과거의 경험이 내 아이의 선생님들을 불신하게 되는 씨앗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할 때도 있다. 아들과 딸이 학교에서 있었던 경험을 얘기할 때면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중학생인 딸이 교실에서 있었던 얘기를 해줄 땐 실소가 나오기도 한다. '아이들이 선생님께 선을 넘는 말과 행동을 하는데 왜 제때 잡아주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고 방치할까?' '그 아이는 의기양양해져 옳고 그름을 망각하게 되고 권력을 쥔 양 그게 힘임을 착각하게 될터' 제때 잡아준다면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바르게 클 수 있다. 정말 사소한 것도 말이다.


난 국민학교 졸업생이다. 학생인권보다 교수자 인권이 더 우선시되었고 매와 벌이 흔했던 시절이다. 지금은 학생인권 때문에 오히려 아이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조차 위반사항에 포함될 수도 있어 귀한 남의 자식 건드리지 않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불신만 쌓여가는 사회다. 사랑을 받아야 사랑을 주는 선생님도 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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