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는 최소 100포기, 반찬은 대야가 기본
#8 우리 엄마는 손이 너무 커!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과 함께 우리말을 배우던 제시가 말한다. "손이 크네? 우리 엄마가 손이 커요~ 음식 만들 때~"
문득 엄마가 생각났다. 우리 엄마는 손이 큰 엄마다. 손이 큰 엄마라 함은 기본적으로 요리를 하는 편이고, 대게는 잘 하는 편이며, 전업 주부일 가능성도 높다. 다 우리 엄마 이야기다.
엄마의 맛있는 집밥을 먹을 때면 한 공기로 부족할 때가 많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엄마에게 밥그릇을 내밀며 "엄마, 나 밥 조금만 더 줘, 한 숟갈만"이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건 한 그릇이다. 내가 말끝은 흐린 걸까. 다음에는 "엄마, 나 진짜 한 숟가락만 줘!"라고 말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여전히 한 그릇이다.
"진짜 한 숟갈만 펐어! 언능 먹어!" 엄마는 머쓱한 상황을 너털웃음과 호통으로 무마하려 한다. 난 엄마가 한 숟가락이 아니라 한 주걱을 크게 푸는 걸 봤는데 말이다. 내 기준에 한 숟가락은 정말 한 숟가락인데 엄마는 그게 아닌가 보다. 이상하기도 하지.
요즘 반찬은 다들 사먹는다던데 우리 엄마는 허구헌날 반찬을 만든다. 시골 사람들끼리 친하게 지내면 날이면 날마다 고구마줄기, 머위대 같은 나물거리가 오고 간다. 그것도 사람의 손길을 전혀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말이다. 이번 추석에도 엄마는 아빠와 나란히 나훈아 콘서트를 보면서 내내 고구마줄기를 손질했다.
또 다른 추석 연휴 날에는 마트에서 무를 실한 놈으로다가 3개를 집어들더니, 다음날 새벽부터 썰어 생채를 담갔다. 그저 손만 크면 몰라, 음식에 대한 자부심까지 있는 엄마는 자기만큼 무채를 균일하게 얇게 썰 수 있는 사람을 없을 거라며 요리에 열을 올린다. 그렇게 만든 반찬들은 우리 네 자매 몫을 덜고도 2층 아줌마, 3층 아줌마, 옆집 사는 친구에게로 전해진다.
김장철이 되면 집안에 배추가 탑을 쌓는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줄어든 편이지 언니들이 하나 둘 독립하기 전까지는 늘 100포기, 200포기의 배추들이 베란다에 왕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엄마는 광주 사는 고모, 부산 사는 이모를 다 부르기도 하고 아파트 아줌마들과 품앗이를 해 가며 김장을 담갔다.
언젠가 엄마에게 김치를 택배로 보내달라고 하기 애매해서 그냥 마트에서 사먹으면 된다고 말했다가 된통 혼난 적이 있다. 엄마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엄마가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왜 사먹냐고 했다. 내가 해외 교환학생을 갔을 때도 엄마는 김치를 못 보내주는 것을 가장 걱정했다. 죽기 전까지 김치 얻어 먹으라는 거 보니 엄마는 정말로 죽을 때까지 김장을 할 모양이다.
당황스러울 만큼 손이 큰 우리 엄마, 도대체 우리 엄마는 왜 그렇게 손이 클까?
손이 크다라는 관용 표현을 나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아빠에 대한 한결같은 신뢰, 딸들을 향한 무한한 모성, 친구와의 우정, 이웃을 들여다보는 배려, 그 모든 것이 엄마의 사랑이다. 설령 어렸을 적 외삼촌들 뒷바라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요리라 할지라도 그 또한 오빠들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었음을, 나는 확신한다.
엄마는 음식을 담으며 사랑도 함께 담는다. 한 숟가락의 크기, 한 그릇의 크기는 엄마의 사랑에 비례한다. 손이 큰 우리 엄마는 나를 많이 사랑하나보다. 오늘은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