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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 Aug 12. 2020

어느 날 엄마에게 '첫' 카톡이 왔다

시험 잘 보라는 그 말이 어찌나 기쁘던지

#2 누군가에겐 낯설고 두려운, 카톡


우리나라 스마트폰 보급률은 약 95%라고 한다. 100명 중 95명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 세계 1위는 덤. 스마트폰에 설치되는 수많은 애플리케이션 중에서도 '카카오톡'은 전 국민을 하나로 모은 혁명적인 소셜 메신저다. 지난해 사분기 국내 카톡 MAU(월간 사용자수)는 약 4485만 명으로 집계됐다. 3G 상용화가 엊그제 같은데 5G 시대가 도래하는 지금의 우리는 폴더폰보다는 스마트폰, 문자보다는 카톡이라는 단어가 입에 붙는다.


엄마는 IT, 통신의 무시무시한 발달에도 데면데면한 사람이었다. 우리 가족이 아무리 스마트폰으로 바꾸자고 설득해도 넘어오지 않았다. 자고로 휴대폰은 전화만 하면 되고 문자는 읽기만 하면 된다며 폴더폰을 고집했다. 그럴싸한 철학인 듯싶지만 속마음은 "카톡을 하기가 두려워서"였다. 우리에게 카톡은 당연해졌을지 몰라도, 까막눈인 엄마에게 문자란 여전히 낯설고 두렵고 어려웠던 모양이다.


2015년, 나는 갤놋2(삼성 갤럭시 노트2)와 이별하고 아이폰6를 만나 한창 사랑에 빠져 있었다. 하루 종일 휴대폰을 놓질 않았고 수시로 카톡, 카톡, 카톡이 울렸다. 나에게 스마트폰은 너무나 당연했다. 고시 공부를 하지 않는 이상 2G 폰으로 돌아갈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연필로 쓰는 글씨도 벅찬데 그녀에게 휴대폰 키보드는 '멘붕'이었다.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는 것이, 아니 그냥 노안 때문에 키보드를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런저런 이유의 두려움으로 '스마트폰 NO'를 외치던 엄마가 세상의 변화에 수긍하게 된 계기는 주변 사람들이었다. 엄마의 친구들이,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스마트폰으로 갈아타면서 '나만 없어 스마트폰'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용기를 내서 문자를 배워보고 싶은 마음과 잘 못 할까봐 두려운 마음이 공존하던 엄마는 결국 스마트폰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2015년 추석, 엄마는 55세 인생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샀다. 뚜렷이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가성비를 따지고 따져서 LG 스마트폰을 골랐던 것 같다. 사긴 샀는데... 그녀에게 스마트폰이란 더 크고, 무겁고, 어렵고, 낯선 물건일 뿐이었고 당신 빼고 실컷 떠드는 카톡은 '못 배운 게 죄'라는 사회적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일종의 무서운 존재였다. 나에게 카톡은 신세계였는데, 엄마에게 카톡은 부부의 세계보다 더 속 터지는 기능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세월에 장사(壯士)는 없을지 몰라도, 기술 장사(뜻: 이익을 얻으려고 물건을 사서 팖)는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일단 카톡을 깔았다. 새로운 친구에 엄마가 떴다! 비로소 우리 가족이 완전체로 카톡 친구가 되었고 처음으로 가족 단톡방도 만들어졌다. 이후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엄마에게 카톡 사용법을 알려줬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문자 쓰는 법을 가르쳤다. 아빠가 본인과 같은 나랏글 키보드로 설명했더니 엄마는 복잡하고 어렵다며 투덜댔다. 내가 천지인 키보드로 바꿔줬더니 이번에는 아빠가 자기 것과 다르다며 알려주기를 포기했다. 그러고선 엄마가 쓴 문자를 보곤 자꾸 맞춤법을 (조금 재수없게) 지적했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꼭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빠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저 속으로 욕할 뿐. 아빠 미안.)



두어 달이 지난 12월 10일, 나는 한창 기말고사를 치르고 있었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휴대폰부터 확인했다. 카톡이 와 있었다.


'♡엄마♡'였다.


그동안 내가 카톡으로 셀카를 보내주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날 엄마에게서 처음으로 카톡을 받았다. 엄마의 첫 번째 카톡은 "만재야 시험잘봐라"였다. 나의 답장에 엄마는 '전하핡카'라는 신박한 오타와 함께 두 번째 카톡을 보냈다. 시험을 모두 마치고 저녁에 나눈 통화에서 엄마는 오전에 응원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은 무슨, 카톡으로 충분했는걸.


5년이 지난 2020년, 아직도 엄마의 카톡에는 오타가 많다. 하지만 전에 비해 속도가 빨라졌고 'ㅋㅋㅋ', 'ㅎㅎㅎ'을 쓰기도 하는 등 의견과 감정을 전달하는 데 훨씬 익숙해졌다. 맞춤법이 틀려도 뜻을 이해할 수 있는 한글의 우수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 되시겠다.


지금으로부터 5년 후, 60대 중반이 될 엄마의 카톡은 어떤 내용일까. 속도는 더 빨라질까. 내용은 더 다양해질까. 이모티콘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을까. 나의 유일한 바람은 엄마의 눈과 손이 아프지 않는 것이다. 엄마가 당신의 마음을 쉽게 표현할 수 있도록, 카톡이 피곤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카톡이 당연한 것이듯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엄마에게도 익숙한 카톡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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