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 하는 거 같이 해보자
#10 엄마랑 나는 환상의 케미!
며칠 내내 SPTI라는 신종 성격 테스트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MBTI가 유행하면서 비슷한 맥락으로 다양한 테스트가 파생되어 왔는데, 이 테스트는 스낵으로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이런 테스트가 실검에 오르고 단톡방을 통해 전달받을 때마다 꼭 해보고 넘어갔다. 이번에도 SNS에서 처음 발견했고 친구가 단톡방에서 공유해줬으며 언니들과 있는 단톡방에 전달했다. 네 자매는 서로 성격을 비교하느라 한동안 단톡방이 시끄러웠다.
엄마 아빠의 결과도 궁금해졌다. 그동안 유행을 모른다고 해서, 스마트폰을 잘 다루지 못한다고 해서, 재밌게 놀이거리들을 딸들만 알고 엄마 아빠에게는 '말해줘도 이해못할 테니까' 지레짐작하며 쉬쉬한 채 넘어갈 때, 가끔은 아쉽고 약간은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한숨 돌리고 나니 9시였다. 엄마가 일평생 시청하는 KBS1TV 일일연속극이 끝나는 시간이다.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운을 띄웠다.
성격 테스트를 해보자고 했다. 내가 문제를 읽어줄 테니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 같은지 두 개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설명했다. 비협조적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엄마 아빠는 의외로 순순히 동조했다.
나는 수화기 너머 엄마 아빠에게 문제를 읽어줬고 선택지를 들으면 노트북 화면에서 체크했다. 거의 20분 동안 친절하게 설명하느라 진을 뺐다. 5천만 스마트폰 시대에 목 아프게 전화로 하다니. 링크를 보내주고 해보라고 하기엔 엄마 아빠의 스마트폰 숙련도는 한참 아래였고, 실은 그렇게 한마디라도 더 하는 순간이 좋았다.
먼저 테스트를 한 아빠는 '섞이면 맛이 배가 되는 토닉워터'가 나왔다. 어쩜 해석 한 문장 한 문장이 아빠 이름 세 글자를 외치는 듯했다. 결과도 흥미로웠지만 문제를 낼 때마다 "넘어졌으면 당연히 민망하니까 조용히 가야지, 큰소리치는 사람은 없다"라고 하는 둥 마치 자신이 고른 답이 '개인 취향'이 아니라 '정상'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아빠의 태도도 신기했다. 흠, 역시 사람은 나이가 들면 저절로 꼰대가 되는 것인가.
엄마는 아빠보다 더 걱정이 됐다. 아무래도 질문들이 '요즘 애들'다운 상황이 많아 엄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다. 다행히 곧잘 대답한 엄마의 결과는 '독립적이면서도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꿀물'. 순수와 낭만을 가지고 있으며 책임감도 크지만 남보다 내가 중요하기도 한 사람. 엄마는 내가 읽어주는 해석을 들으며 자기랑 맞는 것 같다며 좋아했다.
제일 신기했던 건 엄마와 환상의 케미(가장 궁합이 잘 맞는 성격)가 '어딜 가나 기본은 지키는 에이스'인데, 내가 바로 그 에이스였다는 것이다! 역시 엄마에게는 내가 필요해. 괜히 으쓱해지는 결과였다. 엄마 아빠는 "딸 덕분에 재밌는 거 해보네"라며 싱글벙글한 웃음을 남긴 채 통화를 마쳤다. 재밌는 거, 엄마 아빠랑 더 많이 해야겠다.
환상의 케미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엄마와 나는 서로 궁합이 잘 맞다고 느낀다. 어렸을 때 언니들이 우릴 보고 보도(우리 집에서 포옹을 뜻하는 말) 좀 그만 하라고 할 정도였다. 엄마는 내가 비교적 어린 나이였을 때부터 남에게는 말 못 할 속사정을 종종 털어놓곤 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때면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엄마는 그때마다 "아유 신기하게 내가 너한테는 이런 말이 나온다"고 말하곤 했다.
엄마가 언니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모른다. 내게 털어놓은 말을 언니들에게도 털어놓을 것이고 유부녀인 언니들과는 나만 모르는 '엄마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것 같기도 하다. 내게 언니들 흉을 보듯, 언니들에게 내 흉을 볼 수도 있겠다.
아무렴 어때, 나는 엄마가 좋다. 엄마와 나는 전생에 부부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바란다. 다음 생에는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서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입고 싶은 거 다 입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주겠노라고.
재미로 본 성격 테스트에서 천생연분 모녀지간을 인증했다. (아빠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