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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 Oct 13. 2024

혼자 떠난 기차 여행, 근데 이제 농구를 곁들인.

좋아하는 것을 테마로 떠난 여행기

나만의 테마여행의 시작

8년 전 나는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을 준비했다. 반환점을 넘은 대학생활에서 두 번째 휴학을 결정한 겨울방학 시기였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경험도 하고 자립심도 기르고 싶었다.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프로농구 경기일정이었다. 당시 국내 남자 프로농구 10개 구단 중 3개 구단이 경상도에 연고를 두고 있었는데 일주일 사이에 나란히 홈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3개 구단은 창원 LG, 울산 모비스, 부산 KT. 이 중 KT는 2021년 부산에서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이어 2023년에는 KCC가 전주에서 부산으로 연고지 이전을 결정했다.)


3개 지역을 여행 코스로 해서 경기를 보고 오면 너무 좋을 것 같았다. 특히 그때는 '내일로' 기차여행이 한창 유행이라 막연히 기차여행에 대한 환상도 컸다.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5박 6일간의 나 홀로 여행이 시작되었다.


혼자 무언가를 한다는 것

첫 번째 여행지였던 창원은 무궁화호를 타고 갔다. 서울에서 5시간 정도 걸렸는데 본가에 내려갈 때 매번 3시간 30분 버스 타고 내려가는 지방러로서 이 정도쯤이야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KTX보다 좌석이 넓고 내일로 패스가 아니라서 좌석 지정도 되니 더 좋았다.


창원에서 울산, 울산에서 부산으로 이동할 때는 시외버스를 탔다. 나름 기자단 활동을 하며 여기저기 많이 다녀봤다 자부했는데, 살아본 적 없는 경상도에서 이렇게 큰 광역시들을 오가 보니 이 또한 낯설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목적지에서 보낸 시간만이 여행인 줄 알았던 스물셋은 그때 처음으로 목적지로 향하는 길의 모든 순간도 여행이라는 걸 깨달았다.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이 지금은 많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지만 8년 전만 해도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예능 <나 혼자 산다>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사회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혼자 여행은 미디어를 통해 노출이 되었지만, 농구 같은 스포츠 경기를 혼자 관람하는 사람들이 더더욱 많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시도한 혼농(혼자 농구보기)는 스스로를 향한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줬다. 고백하건대, 나는 많은 부분에서 숙맥인 사람이다. 처음엔 호기롭게 일을 벌이는 것 같아 보이지만 걱정도 많고 불안도 많아 시야가 좁아질 때가 많다. 첫 번째 창원 실내체육관에 갈 때도 그랬다. 좋아하는 농구를 즐기러 온 사람이 눈치 보고 쭈뼛거리며 티켓을 사고, 시선을 어디로 둘 지 모른 채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모든 관중이 나를 보고 있다고 착각하며, '혼자 온 걸 들키면 어떡하지' 걱정하며. 자리에 앉아서도 남의 자리에 앉은 사람처럼 긴장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러 왔을 뿐인데, 혼자만의 시간에 몰입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혼농은 익숙해졌다. 경기도 경기지만 경기장을 방문한 자체의 감회가 새로웠다. 특히 울산 모비스의 홈 경기장인 울산 동천체육관에 가면 우승 경험이 많은 팀답게 역대 우승 트로피와 농구 골대가 전시돼 있다. 농구를 모르는 사람도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명문 구단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 부산 사직체육관은 2002 부산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전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아시아 최강 중국을 극적으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국농구 역사에서 최고의 순간이라 꼽히는 경기가 열린 장소에 있다는 것만으로 농구팬에게는 엄청난 울림으로 다가왔다.


혹한기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혼자 떠난 여행이지만 여행 내내 혼자 지낸 건 아니다. 혼자 갔다 둘이 노는 기회들이 있었는데 여기에 우연한 만남까지 더해져 여행의 재미가 극대화되고 여행 이후의 삶도 달라졌다.


창원에서는 블로그로 인연을 맺은 대표님을 만났다. 스포츠를 매개로 종종 소통하다 언젠가 창원에 가게 되면 인사드리고 싶었다. 대표님 덕분에 창원의 별미인 아구찜도 먹어보고 대표님의 이야기 덕분에 스포츠산업에 대한 견문도 넓혔다.


울산에서는 신정시장에서 만난 사장님들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 방문한 손칼국수집은 사장님이 주문을 받으면 곧바로 면을 미시는데 슥슥 대충 만드는 듯한데도 맛이 기가 막혔다. 근데 가격은 단돈 4천 원이라니! 이것이 베테랑의 넉넉한 인심인가 싶었다. 시장 인심에 반해서 농구 경기가 끝나고 밤늦은 시간에 다시 한번 찾아가 이번에는 분식집에 갔다. 튀김도 먹고 싶고 순대도 먹고 싶어서 두 가지 다 시켰는데 사장님이 떨이라며 마구 퍼주셨다. 아마 젊은 대학생이 혼자 오니 뭐라도 더 챙겨주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두 사장님이 나눠주신 따뜻한 정 덕분에 혼자서도 전혀 외롭지 않은 울산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오래 머물렀던 부산에서는 대학 동기 나경이가 여행 내내 함께했다. 부산 토박이인 나경이는 3일 내내 나를 위해 시간을 내줬다. 태어나서 20여 년을 자란 곳이라 익숙해서 재미없을 법도 한데, 나경이는 때론 여행 동지로 때론 여행 가이드로 내가 부산을 맘껏 즐길 수 있게 도와줬다. 나경이의 고등학교 친구 지원이와 지원이의 동생도 함께해 4배 더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우연한 만남도 있었다. 여행 마지막날, 부산에서 묵은 게스트하우스 체크아웃을 하려는데 입구에서 연합 동아리 활동을 같이 한 언니를 마주친 것이 아닌가! 그 언니도 농구를 보려고 여행을 왔다고 했다. 심지어 내가 첫날 이후 방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는데, 방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둘째 날엔 언니와 그 방에 함께 묵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계획을 바꾸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계획한 일정을 취소하고 언니와 서면에서 밥을 먹고 카페를 가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5박 6일 여행했던 2016년 1월 말의 날씨는 한파가 절정인 기간이었다. 최저 기온이 영하 10도를 육박하고 바람은 초속 10m에 이르렀다. 경상남도라 그나마 나았지만 그렇다고 여행하기 좋은 날씨는 절대 아니었다. 


날씨가 그렇게 안 좋은 줄도 모르고 나는 울산에 도착하자마자 롯데백화점 옥상에 있는 대관람차를 탔다. 그 옥상에 나와 직원분 말고는 사람을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을 때 눈치챘어야 했다. 손꼽힐 정도로 날씨가 좋지 않아서 대관람차도 많이 흔들렸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타버렸으니. "고소공포증을 극복하겠어!"라며 당당하게 입장했으나 관람차가 90도 이상으로 올라가면서부터 후회했다. 급히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연을 늘어놓고선 무사히 옥상 땅을 밟기만을 바랐다. 부산에서도 비슷했다. 감천문화마을에서는 바람이 너무 강해서 사진 찍을 때 눈을 뜨기가 어려웠고, 부산역에서 게스트하우스로 걸어가는 동안 바람에 날아갈 것 같아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런 날씨에도 나와의 만남에 시간을 할애하고 나의 여행에 추억을 더해 준 이들을 생각하면 고마울 수밖에 없다. 나는 혼자 떠난 여행이었기에 인연의 소중함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법

이 여행을 계기로 나는 내 안에 숨어있던 '프로 혼여족(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의 DNA를 발견했다. 1년 뒤에는 미국 서부 지역을 3주간 혼자 여행했고 재작년에는 일본 도쿄를, 올해는 싱가포르를 혼자 여행하고 왔다. 처음 서울로 상경했을 때, 버스 하차벨을 누르는 것조차 눈치 보던 소심쟁이는 이제 혼자서도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믿는, 자신감 넘치는 어른이 되었다.


<세계테마기행>이라는 EBS 여행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이 내세우는 '단순한 여행 정보 프로그램에서 벗어난 살아있는 체험기'라는 슬로건처럼 나는 테마를 가지고 떠나는 여행을 즐긴다. 백수 시절 다녀온 도쿄 여행은 나만의 '비즈니스 트립'이었다. 존경하는 일본의 경영 그루 마스다 무네아키의 책에서 접한 츠타야 서점과 여러 공간을 직접 눈으로 보고 기획에 대한 영감을 얻고 싶었다. 2023년 12월 31일에 떠난 새해맞이 부산 여행은 '엄정화 덕질 여행'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배우이자 가수인 엄정화 언니의 콘서트를 보면서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는 나와 다른 팬들의 덕질 모먼트를 온전히 피부로 느꼈다.


그렇게 여행을 통해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순간을 가지고 나면, 좋아하는 것이 더 좋아질 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 자신 또한 더욱 좋아진다. 연애를 할 때 연인과의 데이트도 좋지만 연애를 하는 내 모습을 좋아하는 것처럼, 마치 나에게 취하는 기분이랄까.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나는 그 무언가를 테마로 하는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농구를 곁들인 여행을 통해 농구를, 그리고 스스로를 더욱 좋아하게 된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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