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명에서 20명이 된 신생팀 이야기
주변에 한번 물어볼까?
2022년 여름, 백수 생활을 보내던 중 대학교 친구와 만나 우연히 농구 이야기를 했다. 농구에 미쳤던 찬란한 대학 시절을 보낸 우리의 모습은 어느새 과거형이 되어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자연스럽게 취업을 하고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농구를 볼 생각도 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한동안 거리를 둬야만 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더니, 농구의 즐거움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서로 그때처럼 다시 농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이따금씩 농구하자, 사람 모아보자는 이야기를 하긴 했으나 농담처럼 지나갔는데 이제는 둘다 진심이었다. ESFP 성향의 친구는 주변에 농구에 관심있는 지인들을 섭외해보겠다는 제안을 했고, ISTJ 성향의 나는 사람만 있으면 나머지는 책임지겠다는 마음으로 그녀의 발언을 적극 지지했다.
강남의 한 농구 코트에서 친구의 아는 언니들과 대학교 때 같이 농구했던 언니까지 삼삼오오 모인 것이 역사적인 첫 운동이었다. 이후 섣불리 동호회를 키우기엔 제대로 된 연습 장소도 코치나 매니저도 없었고, 즐겁게 농구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했기에 우리는 당분간 지인 영업을 하기로 했다. 대학교 친구들과 후배가 더 들어왔고, 대학교 친구의 고등학교 친구, 후배의 고등학교 친구도 우리 동호회에 들어왔다.
그것이 '키농(KINONG)'의 시작이었다.
키농은 '즐(KIN)'과 농구의 '농(NONG)'이 합쳐진 말로 '즐겁게 농구하자'를 모토로 삼는다. 90년대생들은 기억하는가. 우리는 초딩 시절 하루에도 수십번 '즐'거움을 추구하며 자란 세대다. 온라인 세계에서의 인삿말로 즐! 거절의 의미로도 즐! 욕을 되갚아주고 싶을 때도 즐! 언제나 즐즐거리다 못해 옆으로 뉘어 'KIN'이라고도 말하던 우리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순수한 즐거움을 좇고 싶은 마음에 우리 동호회의 이름은 키농이 되었다.
문어발식 영업은 갈수록 부흥했다. 대학교 친구의 다른 학과 친구, 그 친구의 여동생도 우리의 멤버가 되었다. 심지어 직장 동료 두 명을 데리고 입단한 친구도 있다. 그 직장 동료 중 한 명은 자신이 다니는 미용실 헤어디자이너 선생님을 데려왔다. 미용실에 슬램덩크 전권이 전시되어 있는 걸 보고 키농을 소개했다고 한다. 새로운 멤버들이 들어올 때마다 'ㅇㅇ의 친구' 이런 식으로 연결고리가 있는 지인을 붙여서 통성명을 했다.
나는 영업에는 재간이 없는 대신 '고객 관리'에 힘썼다. 이제 막 농구에 발을 들인 새 멤버들에게 성심성의껏 농구를 알려줬다.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한 치트키 멘트와 함께- "우리 다단계 아니에요~" 그렇게 2년이 지난 지금, 2명이서 시작한 농구 동호회는 20명이 되었다. 농구를 잘하든 못하든 실력은 상관없다. 중요한 건 다같이 모여서 뛰고 웃고, 농구를 하는 그 시간만큼은 모든 걱정과 고민을 잠시 내려놓는 것이다.
코트 위의 우리는 직업도, 나이도, 계급장 같은 모든 조건들을 벗어던진다. 경기 결과 역시 개의치 않는다. 오로지 즐거움 하나만을 위해 달린다. 그러다 보면 코트 위에는 웃음 소리만 가득하다. 농구 실력은 조금씩 높아지는 대신 행복의 역치는 빠르게 낮아지는 곳, 키농은 오늘도 외친다.
"즐농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