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을 달래는 마음, 나를 달래는 마음
통, 통, 통. 농구장 바닥이 울려 퍼진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소리, 공을 통통 튕기는 소리다. 같은 농구공으로 우리는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통- 통- 통- 마치 시계추를 달아놓은 것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청명한 소리를 낸다. 적당한 템포의 규칙적인 리듬으로 만들어진 멜로디는 안정감을 준다. 너무 급하지도 너무 게으르지도 않은 박자감이다.
통- 통통- 통통통- 토통 통ㅌ...... 누구나 결말을 짐작할 수 있는 소리가 난다. 처음부터 조급했지만 갈수록 예측할 수 없이 변주되는 박자는 결국 회생 불가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같은 농구공인데 왜 다른 소리가 나는 걸까.
농구가 쉽고 재밌어지는 가장 첫 번째 방법은 냅다 슛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농구공을 자주 만지는 것이다. 키농(내가 속해 있는 농구 동호회)에 들어온 농구 입문자들에게 드리블을 가르쳐줄 때, 나는 반드시 공의 표면과 움직임을 잘 느껴보라고 말해준다.
약간의 돌기가 있는 공의 외피와 자글자글 주름이 있는 나의 손바닥이 만날 때, '썸'인 듯 아닌 듯한 미세한 마찰이 생긴다. 이 마찰을 잘 느끼려 할수록 농구공과 더 친해질 수 있다. 농구공을 예민하게 느끼며 마찰력을 이용하면 드리블할 때 공과 손바닥이 닿는 찰나의 순간에도 공을 컨트롤하기 쉬워진다.
드리블은 농구의 기본 중 기본이다. 통- 통- 안정적인 드리블을 하려면 공을 때리면 안된다. 입문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이기도 하다. 이들이 드리블하는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면 손바닥으로 공을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조금만 잘못 다뤄도 내 주위를 벗어나버리는 농구공인데 때리듯이 드리블하면 공의 표면을 느끼고 마찰을 일으킬 수 있는 시간은 더욱 짧아진다.
드리블은 공을 누르듯이 튕겨야 한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농구공의 위치 에너지는 최대가 되면서 운동 에너지는 0이 되는 순간에 요요를 힘차게 던지듯 공을 눌러줘야 한다. 이때 손목을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어깨도 도와줘야 손바닥 전체가 골고루 공을 느낄 수 있고 공과 더 친해질 수 있다.
금쪽이처럼 예민한 녀석인 농구공을 나는 아이 다루듯 어르고 달랜다. 어린 아이를 절대 때릴 수 없듯이, 아이와 친해지려면 눈높이에 맞춰 친구처럼 다가가야 하듯이, 그렇게 달래며 지낸다.
드리블을 하다 공이 조금 왼쪽으로 치우치면 다시 오른쪽으로 당겨오고, 반대로 오른쪽으로 벗어나면 다시 왼쪽으로 가져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앞으로 가버리면 뒤로 당기고, 너무 뒤로 와서 내 몸에 닿을 것 같으면 다시 멀어지게 앞으로 드리블 쳐야 한다. 그렇게 수천 수만 번을 지난하게 반복해야 공을 달래는 법을 조금씩 알게 된다.
이석원 작가의 산문집 <2인조>는 "인간은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나라는 존재를 타자이자 같은 편의 입장에서 바라봄으로써 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 고찰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에게 너무 깊이 매몰하여 잦은 오류에 빠진다. 나도 그랬다.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주어지는지 억울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볼 거라 착각하며 위축됐다.
살아가는 게 힘들 때면 내가 지금 2인조로서 나 자신을 잘 돌보고 있는지 물어봐주면 어떨까. 왜 그것밖에 못하느냐고 날카로운 말보다는 지금 괜찮은 거 맞냐고, 네 마음이 어떻냐고. 우리에게는 타자의 입장에서 나를 어르고 달래는 연습이 필요하다.
몇 년간 놓았던 농구공을 다시 잡고 사회인 여자농구 동호회를 만든 지 만 2년이 되었다. 이 기간은 내가 번아웃과 싸운 기간과도 같다. 나는 농구공에 나 자신을 투영하고 농구공을 통- 통- 튕기면서 2인조로 지내는 연습을 했다. 공을 달래면서 내 마음도 달랬다. 나에 대해 더 알아가고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고, 스스로를 갉아먹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되었다. 나의 내면아이를 들여다보며 어린시절을 반추해 달래고 또 달랬다.
사실은 나를 달래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공을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