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으면 만들면 되지
공은 하나, 사람은 다섯. 우리는 이 공을 골대에 집어넣기 위해 코트를 분주히 뛰어다닌다. 빠르게 달리고 상대 수비를 제치고 몇 번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달린다. 골대에 한 발이라도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혹은 상대 수비와 조금이라도 멀어지기 위해서 서로 무언의 눈빛을 주고 받으며 누군가 공을 잡아 슛을 던질 준비를 하면 다른 선수들은 그 공이 어디로 갈지 예측하며 수비와 몸싸움을 벌인다.
내가 만든 팀
대학시절 최초의 여자 농구 동아리를 창단해 대회에 나갈 때가 생각난다. 농구 실기를 치르고 입학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농구가 처음이었다. 엔드라인이 어느 선인지, 더블 드리블이 뭔지도 모른 채 우리는 이화여대가 주관한 여자 대학 농구 동아리 대회에 참가했다. 첫해 성적은 말할 것도 없다. 이기려고 나간 게 아니라 경기 규칙을 배우러 나간 것이라 해두자. 오죽하면 심판들이 휘슬을 불고 판정을 내린 후에 우리에게 규칙을 세세하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대회를 즐긴 우리는 다음 해에도 같은 대회에 참가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예선을 통과해보겠노라 결의를 다졌다. 두 번째 경기, 여기서 지면 우리는 다시 짐을 싸고 돌아가야만 했다. 1년 동안 꽤 성장한 우리는 고만고만한 실력의 팀과 엎치락뒤치락 다투고 있었다. 마지막 4쿼터, 누가 더 집중하냐의 싸움이었다. 시간은 1분 미만으로 줄어들고 1번의 공격 기회가 중요했다. 마침 나에게 공이 왔고 나는 과감하게 중거리 슛을 던졌다. 공은 골대를 통과했다. 역전이었다. 남은 시간 상대의 공격을 기어이 방어한 우리는 승리를 거두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모든 스포츠인이 마찬가지겠지만 나에게 농구는 농구 그 이상의 의미다. 나는 유독 팀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크다. 코트 위에서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사실이 주는 힘은 내게 무척이나 소중하다. 나에게 농구는 생활체육을 넘어 팀워크를 알려주는 스승 같은 존재다. 다섯 명의 주전 선수들과 벤치에서 응원하는 선수들, 감독과 코치, 매니저까지 한 팀이 되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열정을 사랑한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마침내 최선의 결과를 성취할 때, 우리는 단순한 승리를 넘어 인생에서 중요한 연대와 협력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으며 성장하게 된다.
내가 만들 팀
'규칙없음' 문화로 유명한 넷플릭스는 자신들의 조직을 '프로 스포츠 팀'이라 비유한다. 그들은 이기는 팀을 만들기 위해 개인에게 뛰어난 기량을 요구하고,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나누고, 최고의 결과를 내려고 한다. 공을 패스할 줄도 알고 동료가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프로라 여긴다. 팀이 이기는 것이 곧 자신들이 이기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초년생이 되었을 때, 나는 넷플릭스 같은 조직을 갈망했다. 일을 할 때도 원팀 정신이 중요하다고 믿었기에 농구를 하며 느꼈던 팀워크를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도 재현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커리어 초반은 그렇지 못했다. CEO와 리더십의 의견이 달랐고 리더십과 실무자의 의견이 달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담배 타임'이 '작전 타임'이 되어 엉뚱한 곳에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 받는 만큼만 적당히 일하는 동료도 수두룩했다. 일에 대한 환멸도 느끼고 혼자 싸우는 듯한 기분에 지칠 때도 많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빠르게 백마 탄 왕자님을 찾아나서듯 조직을 옮겼다. 최장 근속 기간은 2년이 채 되지 못했고 그마저도 이직을 할 때마다 짧아졌다. 명성이 자자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꿈꿨던 사회초년생의 현실은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저니맨(팀을 자주 옮기는 선수라는 뜻)' 신세일 뿐이었다.
어느덧 5년 차 직장인, 여전히 넷플릭스 같은 조직에 몸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작은 변화가 생겼다. 바로 내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이다. 만약, 이 세상에 내가 바라는 그런 조직이 없다면, 어느날 하늘에서 백마 탄 왕자님이 뚝 떨어지듯 운명처럼 그런 조직을 만나길 기다리기보다 내가 그런 팀을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팀워크와 열정을 내 힘으로 만들어나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팀워크의 기본은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일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동료들의 직무와 성향, 그동안의 커리어를 잦은 대화를 통해 이해하려 한다. 좋은 아티클이 있으면 서로 공유하고 괜찮은 유튜브 영상이 있으면 시간 내서 같이 본다.
어느 행사 외근을 나간 날, 공식적인 회식은 없었지만 나와 함께 고생한 동료들에게 따로 저녁을 샀다. 외근 나가는 것을 '차출 당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게 그들의 수고에 대한 인정과 격려를 전하고 싶었다. 포지션을 변경하여 나와 더 자주 협업하게 된 동료에게는 자리 이동을 한 날 "ㅇㅇㅇㅇ(회사)는 좋겠다, ㅇㅇ(동료)가 ㅇㅇㅇㅇ(새로 옮긴 직무)라서"라는 글귀가 적힌 인간화환 리본은 선물하기도 했다. 동료가 나와 같은 부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와 같은 프로젝트를 담당한다면 적어도 나와 일할 때 즐겁게 몰입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다.
리더십을 발휘하기엔 아직 한참 모자란 주니어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오지 않을 완벽한 팀'을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농구 동호회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두 곳에서, 나의 위치와는 상관없이 묵묵히 나만의 팀을 만들어가고 있다. 함께 땀 흘리고 서로 응원하는 그 시간들이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그 기쁨이 나의 일상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나 스스로에게 가장 좋은 동료가 되어주려 한다. 나에게 멋진 패스를 주고 나에게 멋진 득점으로 보답하는 삶을 살아간다.
내가 만들고 있는 가장 완벽한 팀은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