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재 Oct 02. 2024

농구공과 수학의 공통점

하나와 둘의 차이

농구공에 성별이 있다?


체대입시를 준비하던 고3 때였다. 농구 실기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여름방학에 맞춰 서울에 올라와 특강 수업을 들었다. 저멀리 '굴비의 고장'으로만 알려진 시골의 흙바닥 운동장에서 겨우 농구공 몇 번 튕겨본 아이가 체대를 가겠다고, 소위 말하는 '입시 농구'라는 것을 처음으로 배우게 되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농구공에도 성별(?)이 있다는 걸. 농구공은 크게 5호, 6호, 7호로 구분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공은 7호인데 이건 지름이 24cm로 주로 성인 남성을 위한 공이다. 실제 남자 프로농구 공인구도 7호가 사용된다. 6호는 성인 여성과 청소년용으로 지름은 1cm 작은 23cm, 여자 프로농구 공인구로 사용되고 중고등학교 체육관에서도 볼 수 있다. 5호는 초등학생용으로 지름은 6호보다 1cm 더 작은 22cm다.


실기 시험에서도 남학생은 7호, 여학생은 6호 농구공으로 응시한다. 나는 6호로 시험을 봐야 하니 연습도 당연히 6호로 했다. 처음엔 지름 1cm 차이가 별 대수인가 싶었다. 그런데, 막상 연습을 해 보니 이건 정말 대수의 일이었다. 양 손으로 6호와 7호를 번갈아 잡아보면 무게감은 당연하고 손가락이 느끼는 긴장도가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7호면 어때, 오히려 좋아


두 공의 차이에 대한 감각이 짙어지자, 나는 본능적으로 7호를 회피하기 시작했다. 농구공 박스에서 공을 고를 때, 무게를 체감하기도 전에 사이즈가 적혀있는 부분부터 찾고 숫자 7이 보이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6호 어딨지?"를 반복하며 6호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습관성 6호 의존병(?)은 대학에 입학한 이후 농구 수업을 들을 때도, 여자 농구 동아리 활동을 할 때도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어느 새 '나는 여자니까 6호 농구공을 써야 한다'라는 문장은 명제가 되어버렸다. 


그 명제에 객관적 검증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농구장에서 여러 사람들과 여러 농구공이 뒤섞인 채 연습을 하다 보면, 이따금씩 6호가 아닌 7호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 개인이 소유하는 공이 아닌 이상 특정 공만 고집하는 건 매너도 아니고 사치일 뿐이다. 그 시간에 슈팅 연습을 하나라도 더 하는 편이 나으니까. 그리고 아주 가끔씩 더 크고 무거운 7호로도 슛을 잘 넣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도전해보기도 했다. 6호만 던지다 7호를 던지면 6호를 기준으로 길들여진 모든 손 끝 감각과 몸의 밸런스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힘이 더 들어가면서 자세는 흐트러지고 슈팅 정확도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한 번, 두 번, 7호로 연습을 오래 하고 나서 6호를 손에 쥐어 보니 새로운 경험이 일어났다. 6호가 더 가볍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양 손의 감각은 더욱 예민해졌고 덕분에 영점 조절이 수월해져서 슈팅 정확도도 좋아졌다. 특히 비거리가 늘어나면서 조금 더 먼 거리에서도 슛을 던질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6호와 7호의 경계를 허물기 시작했다. '7호면 어때, 오히려 좋아' 마인드로 연습했다. 6호 안에 갇혀 있던 내가 7호라는 더 넓은 세상에서 도전을 거듭 했더니, 이제는 작은 체구임에도 3점슛을 넣을 줄 아는 선수가 되었다. 



수리 가형 문제집 8권


농구공을 볼 때마다 나는 나의 은사님이 떠오른다.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안다' 이 말을 농구에 적용한다면 '농구공 7호로 한 골을 넣을 줄 알면, 6호로 두 골을 넣을 수 있다'로 풀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말을 수학에 적용한다면 '수리 가형을 2등급 맞으면, 수리 나형은 1등급 맞을 수 있다'로 치환된다.


나의 고3 수능이 정말로 그랬다. 지금처럼 문이과 통합이 아니었던 시절에 학교는 다닌 나는 1학년을 마치고 이과를 선택했다.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수학 과목 선생님이셨다. 2학년 1학기 첫 수학 수업, 담임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더니 A4 종이 한묶음을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나눠주셨다. 수학 문제집을 복사한 자료였다. 다 나눠주신 선생님은 교탁으로 돌아오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학 문제는 무조건 많이 풀어봐야 한디. 시중에 나와있는 문제집들 7권, 8권 풀면 수능에서 다 맞힐 수 있으. 근디 니들이 문제집 살 돈이 어딨겄냐. 앞으로 쌤이 복사해서 나눠줄 테니까 그것만 풀어라."


그 이후 수업 때마다 스테이플러로 한땀 한땀 묶어낸 문제지가 계속 쌓였다. 선생님은 20분 정도 문제 푸는 시간을 주시고는 나머지 수업 시간은 칠판의 왼쪽 상단 꼭지점부터 오른쪽 하단 꼭지점까지 빼곡하게 풀이로 채워가셨다. 안그래도 어려운 수학인데, 선생님의 나긋하고 조용한 목소리가 더해져 수업은 그 자체로 극한의 난제가 되었다.


1학기는 그럭저럭 따라갈 만했는데 2학기가 되니 고민이 생겼다. 나는 예체능 계열인 체대를 가고 싶었기에 이과 수학인 '수리 가형' 시험을 볼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3학년이 되면 문과 친구들과 똑같이 '수리 나형'으로 모의고사를 볼 텐데, 지금부터라도 내신을 버리고 수리 나형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의 수업이 진도를 나갈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도 빨리 수리 나형으로 도망가고 싶은 이유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가 고민을 말할 때마다 나를 다독이셨다.


"딱 1년만 이렇게 혀(해) 봐. 가형은 2등급만 유지한다 생각하고. 그러고 내년에 나형 보면 진짜 쉬워질겨. 무조건 1등급 맞을거여."


순한 마음씨의 선생님이지만 늘 말에는 뼈가 있는 분이셨다. 2학기 기말고사까지 정말 어렵고 귀찮았지만 그래도 착하신 담임 선생님만 믿고 문제를 풀고 또 풀었다. 갈수록 1등급을 맞지는 못했지만 2등급 수준은 유지했다. 그렇게 1년 뒤, 고3이 되어 치른 첫 모의고사에서 수리 나형을 풀었다. 아니 이게 웬 걸, 진짜 껌이잖아!? 과장을 조금 보태면 답이 뻔히 보이는 문제들이었다. 문제를 푸는 속도는 그전에 느껴본 적 없을 정도로 빨라지고,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가 확 트였다는 걸 나의 온 시세포가 느끼고 있었다!


첫 모의고사를 시작으로 고3 내내 나에게 수학은 가장 믿을 만한 과목으로 자리잡았다. 선생님 말씀처럼 수리 가형으로 훈련한 덕분에 나형은 식은 죽 먹기였다. 결국 나는 수능에서도 당당하게 1등급을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7호 농구공은 수리 가형 문제집 같은 것이다. 조금 더 어렵고 힘든, 하지만 적응하고 이겨낸다면 실력을 더 크게 키울 수 있게 도와주는 촉매제 같은 존재. 



야, 너도 할 수 있어


가끔, 아니 종종 나의 한계를 먼저 선그어버리는 순간들이 있다. 대게는 두려움이 앞서서 내 실력을 의심하고, 더 쉬운 길을 택하고 싶어서 그런 마음이 올라온다. 그때마다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7호 농구공을 떠올린다. 한 번 더,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려운 것에 도전해봐도 괜찮다. 문제집을 진득하게 풀던 내 모습도 떠올린다. 그때의 경험으로 나에게는 어려운 것을 쉽게 만드는 유전자가 생겼다. 그 유전자의 존재를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너도 7호 던질 수 있어!

작가의 이전글 2인조의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