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나는 5층짜리 작은 아파트에 살았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 이사해서 20년을 살면서 나의 모든 자아가 형성된 곳이었다. 4층이었던 우리집은 베란다 안으로 햇살이 잘 들어오는 남향이었고 전망도 좋았다. 살림을 잘하는 엄마 덕분에 집안은 늘 쾌적했다.
농구를 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거실 한복판을 농구 코트로 만들었다. 마침 집에 있던 파란색 탱탱볼은 나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통통 튕기는 드리블 연습도 허공을 가르는 슈팅 연습도 했다. 작은 탱탱볼이 벽을 맞고 다시 튕겨나오는 모습이 재밌어서 무한 패스 연습도 했다. 그저 던지고 다시 잡는 그 리듬이 즐거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 농구 골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방의 작은 학교 운동장은 시설이 좋지도 않았고, 자유롭게 오갈 만큼 안전함을 느낄 수 없었던 곳이었다. 그저 방구석 농구선수였던 그 시절, 나만을 위한 골대를 간절히 바라며 온 거실을 헤짚고 다녔다. 보다 못한 엄마는 아빠에게 농구 골대를 만들어 달라고 했고 아빠는 말했다. "골대 그까이꺼 아빠가 만들어줄게!"
얼마 후 집으로 돌아온 아빠의 손엔 진짜 골대가 쥐어져 있었다. 아빠는 손재주가 타고나 대장장이처럼 뭐든지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우리는 그런 아빠를 맥가이버라 불렀다. 아빠는 밭에서 쓰고 남은 스테인리스판과 쇠파이프를 이용해 나를 위한 단 하나의 농구 골대를 만들었다. 용접으로 떼운 흔적이 선명히 남은 투박한 골대였지만 내가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완벽한 농구 골대였다. 아빠는 직접 드릴로 벽을 뚫어 골대를 못으로 단단히 고정했다. 이제 더 이상 허공을 가르는 슈팅이 아닌 직접 골대 안으로 공을 집어넣을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덩크도 했다!
어느 아파트와 다를 바 없이 우리집 천장은 약 2미터 남짓 되었을까. 아빠가 달아준 농구 골대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아서 내가 살짝 점프하면 닿을 정도였다. 덕분에 나는 160cm이 되지 않는데도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이라는 명언을 가슴 깊이 새기며 마음껏 덩크슛을 연습할 수 있었다. 집에서 덩크라니,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진지하게, 덩크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곧 마이클 조던이었다! 매일같이 농구선수에 빙의해서 레이업을 하고 자유투를 쏘고 덩크를 꽂았다. 부모님이 있건 없건 상관하지 않았고 우리 부모님도 딱히 나를 제지하지 않으셨다. 물론 가끔 혼날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농구 골대는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건 막내딸을 향한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감사한 분들이 또 있다. 바로 아파트 이웃분들이다. 우리집과 같은 라인에 살던 집들은 모두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이웃 간의 정이 넘치는 모습이 2000년대 우리 아파트에도 있었다. 우리 바로 아래집과도 왕래가 잦았다. 아래집 아주머니는 종종 "언니~"하며 우리 엄마를 찾아왔고 편하게 수다떨다 가셨고 우리 가족이 근처로 이사간 이후에도 지금도 동네에서 마주치면 안부를 주고받는 분이다.
아주머니는 내가 집에서 농구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뛰지 말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요즘 지어진 아파트에 비해 방음이 더 잘되는지 몰라도 내가 뛰는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았을 리는 없다. 아마도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신 것 같다. 사실 우리집도 마찬가지다. 우리 자매들이 더 이상 쓰지 않는 피아노를 아래집 딸에게 선물했고 그 아이는 낮이고 밤이고 피아노를 쳤다. 조금 시끄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건 아래집도 마찬가지였을 테고, 우리는 서로의 소리를 층간소음으로 여기지 않았다. 어쩌면 피아노 선물이 은근한 평화를 만들어주었을까?
층간소음 방지용 쿠션 슬리퍼를 신은 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런 소중한 이웃분들과 함께 살며 성장기를 보낸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깨닫는다. 딸의 취미를 응원해 준 부모님과 이웃집 아이의 넘치는 열정을 존중해 준 이웃분들 덕분에 마음껏 뛰어다니며 농구 연습을 할 수 있었고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취미 하나를 얻었다. 그것도 모자라 농구로 대학까지 갔으니,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화려한 덩크였다.
아파트에서 탱탱볼로 덩크를 하며 자란 그 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누군가의 취미 혹은 꿈을 그저 묵묵히 바라봐주자. 아빠가 만들어 준 농구 골대가 여전히 내 안에서 나를 지지해주는 것처럼, 어린 아이들의 마음 속에 농구 골대 같은 선물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