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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Jun 06. 2023

그해 여름방학

악몽같은  기억



글지글 한낮의 열기로 숨이 턱턱 막혀오는 시골집 앞마당.

커다란 셰퍼드 한 마리가 목줄을 길게 늘어뜨린 채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리며 눈앞에 조그마한 계집아이를 노려보고 있다.

순임이는 겁에 질린채 가만히 그 자리에서 친구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지난 학기에 전학 갔던 미선이가 며칠 전 여름방학을 맞아 할머니네로 놀러 오면서 둘은 매일 같이 붙어 다니다시피 했다. 오늘만 벌써 이 집에 몇 번째 드나드는지 모르겠다.

옷 갈아입고 나온다던 미선이는 한참 동안 나오지 않는다.   

   

‘나도 반바지로 갈아입고 올까?’  

   

날도 더운데 오늘따라 왜 긴 바지를 입었는지 순임이는 속으로 구시렁대며 자신의 빨간색 바지를 내려다보았다.

순간 검은 물체가 순임이 옆으로 스윽 다가왔다. 셰퍼드였다. 기겁한 순임이 뒷걸음질 치며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 댔다.

그 소리에 흥분했는지 셰퍼드는 길길이 날뛰더니 순임이를 덮쳤다.


"으아악... 미선아... 아아.... 악! 사람 살려! 살려... 주세요!"


순임이울부짖는 소리에 뒤늦게 미선이네 가족들이 뛰쳐나왔다. 개를 끔찍이 예뻐하는 미선이 할머니가 흥분한 셰퍼드를 순임이에게서 떼여놓고 기절하다시피 한 순임이를 미선이 외숙모가 둘러업고 병원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미선이가 울며 쫓아가고 있었다.     





조용하던 시골병원이 난리 났다.

의사며 간호사며 모두 뛰쳐나왔다. 진료 보던 환자들까지 멀찌감치 이 상황 지켜보고 있었다. 순임이 왼쪽 다리는 성한 곳이 없었다. 가장 심한 데는 무릎 바로 아래 정강이 쪽 살점이 크게 나가떨어져 봉합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침대에 힘없이 축 늘어진 순임이를 그렁그렁한 눈으로 미선이가 바라보고 서 있다.

응급처치하는 걸 지켜보는 미선이 얼굴이 일그러졌다가 울먹다가 끝내는 고개를 돌려버린다.

미선이의  표정을 보며 순임이는 몰려올 통증을 예감했다. 마취는 분명 했을 텐데 바늘 들어오는 느낌이 너무 생생하다.

....

멈춘 듯한 시간 속에 드디어 응급처치가 끝나고 순임이 왼쪽 다리에는 여기저기 반창고와 붕대들로 칭칭 감겨있었다.    

  

다시 미선이 외숙모 등에 업혀서 집으로 돌아온 순임이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시끌벅적한 소리와 욱신거리는 통증에 잠깐 눈을 떴다가 다시 잠들기를 반복하던 순임이는 저녁 먹으라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간신히 잠에서 깼다.

밥상에 마주 앉은 순임이 앞에 고기가 수북이 담겨 있는 접시가 있었다.


“할머니, 무슨 고기야?”


“어. 옆집에서 준 건데 먹어 봐. 맛있을 거야.”


오늘 하루 죽다 살아난 손녀가 안쓰러워 할머니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순임이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고기는 딱 두 점 먹었다. 한 점만 먹으려다가 할머니가 하나만 더 먹으라 해서 억지로 먹었다. 이상하게 더는 먹고 싶지 않았다.  

   




며칠 후 순임이는 미선이를 통해 그 고기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날, 순임이 곤히 잠들어있는 사이에 동네는 또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순임이 삼촌 미선이 할머니 집으로 쳐들어간 것이다. 사람 무는 개를 언제까지 살려둘 거냐고 당장 없애지 않으면  어떻게 나올지 나도 모르니까 알아서들 하라고 엄포를 놓았단다. 결국 미선이네는 그날 개를 잡았고 그 고기를 순임이 먹으라고 가져왔던 거다.


“욱--” 순임이 헛구역질하자 미선이가 말했다.


“야, 그래도 개한테 물렸을 때 개고기를 먹으면 상처가 빨리 아문다고 그러던데.”


“누가? 누가 그랬는데?”


“아이 몰라. 그냥 어른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어.”


미선이는 한참을 조잘대며 떠들었다.


“아무튼 그 개는 진즉에 사라졌어야 했어. 내 동생도 예전에 물렸었잖아. 할머니 고집에 용케 살아남았던 거지.”


악몽 같은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순임이는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계세요?”


문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했다.


“야, 우리 외숙모 왔다. 너 오늘 병원 가야 한다며? 얼른 옷 갈아입어.”


미선이의 도움을 받아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미선이 외숙모가 자전거를 끌고 서 있었다.

순임이는 조심스레 자전거 뒷자리에 올라탔다.



자전거 타며 바라본 시골 풍경이 오늘따라 낯설게 느껴졌다.

매미 소리 요란한 이 여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해 #여름방학 #셰퍼드 #악몽같은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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