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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Aug 01. 2023

아들아, 너의 사춘기는 이제 끝났어!

곧 엄마의 갱년기가 시작될 예정이야


무릎통증으로  매주 병원 다니며 치료받던 고1아들..

하도 낫질 않아서 MRI검사를 하기로 했다.

입원해서 검사하는 게 여러모로 나을 것 같아서 입원수속을 하던 중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한다는 안내에 녀석이 식겁을 했다.

다른 건 다 하겠는데 코로나검사만은 절대 할 수 없다고 했다. 덩치가 커다란 녀석이 울상을 지으며 나와 실랑이하는 걸 보고 의사 선생님이 껄껄 웃으신다.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녀석과 싸워봤자 소용이 없음을 너무 잘 알기에 깨끗이 포기하고 입원 말고 통원으로 검사받기로 했다.



길고도 긴 대기시간..

녀석은 군말 없이 기다린다.

본인이 입원을 거부했으니 할 말이 없는 거다.


아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나는 옛 기억을 떠올려본다.





4.4킬로의 우량아로 태어나 주변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더니 키우는 내내 정말 단 하루도 쉬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야 어느 정도 커서 말도 통하고 하니 살만해진 거지 초등학교 5학년까지 나의 육아는 운통 눈물바람이었다.


나의 성향을 닮아서 겁 많고 예민한 데다  아빠의 고집까지 닮다 보니  다루기 쉽지 않은 아이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병원진료나 예방접종, 치과는 물론이고 미용실이라도 한번 갈라치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다. 울며 불며 하도 난리를 쳐서 소아과에서, 미용실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적도 있었다.

어디든 맘 편히 한 군데를 정해놓고 다닐 수 없었다. 안 다닌 소아과가 없을 정도로 매번 여기저기를 전전하며 눈치 보며 서러움을 당하기 일쑤였다.


약 한번 먹이는 것도 얼마나 힘이 드는지 ㅠ

좋게 달래서 먹이다 보면 한나절이요, 강제로 먹이면 다 토해냈다. 그런 아이를 붙잡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대체 넌 왜 그런 거냐며....




낮잠 한번 자고 일어나면 한 시간씩 울고 보채는 바람에 오죽하면 어린이집 평가인증을 받는 날 하루만 가정보육을 해달라고 원장님이 간곡히 부탁을 해온 적도 있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유난스러운 아이를 키우는 죄로 그날은 어린이집보내지 않았다. 평가인증을 통과하는 데 있어서 혹여 우리 아이가 걸림돌이 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시간이면  나는 늘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원차량에서 내려 사이좋게 손잡고 집으로 들어가는 게 나의 소원이었지만 녀석은 매번 떼쓰고 화내고 투정을 부렸다.

어느 날은 너무 속이 상해서 아이를 붙잡고 마구 울분을 토해냈다.


"대체 엄마가 너한테 무슨 잘못을 했니? 엉? 말 좀 해봐. 엄마가 죄인이야? 대체 왜 엄말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엄마 그냥 없었으면 좋겠어? 엄마 가버릴까? 사라져 줄까?"

아이는 내 말에 기절하듯 울어재끼고 나도 주저앉아 펑펑 울어버렸던 날들...

그런다고 바뀔 아이가 아니었다. 타고난 기질이 예민한 데다 나 또한 아이를 제대로 품어주지 못하다 보니 우리의 갈등은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초등학교 3학년 때 아이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함께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그 과정조차 쉽지 않아서 병원 가는 날과 상담받는 날은 둘 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서 서로 상처주기 바빴다.

함께 항우울제를 복용하며 그 부작용에 시달리고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상처받고... 그 험난한 과정 끝에 만난 심리상담사 덕분에 2년 동안 비교적 안정적인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어린이집행사나 학교행사에 다녀와서 나는 늘 울었다. 아이로 인한 힘듬에 마음이 무너져 도저히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할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아이 6학년 공개수업 때 처음으로 울지 않고 끝까지 기분 좋게 머물다 올 수 있었다. 상담효과였던 건지 아니면 아이가 그만큼 컸다는 증거인지 몰라도 그때부터 나는 조금 살만해졌던 것 같다. 물론 아이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어둡고 긴 터널을 벗어나 처음으로 평화를 느껴보았다.




주변 또래 아이들이 스멀스멀 사춘기가 찾아올 무렵 나는 아이에게 미리 선수를 쳤다.


"아들... 넌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춘기였고  그 사춘기는 이제 다 끝났어! 친구들 사춘기 흉내 낼 생각은 애초에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세뇌시키듯이 틈틈이 하는 엄마의 말에 아이는 능글맞게 대답했다.


"눼눼.. 알겠습니다 형님! 저의 사춘기는 이미 끝났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러고는  깔깔대며 웃었다. 그런 아이를 보며 나도 속 편히 웃어 보였다.

마주 보며 웃기까지 우리는 참 오 시간이 걸렸다.






"강*환님!"


간호사의 호명에 녀석이 벌떡 일어났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들~ 잘하고 와^^"


고개를 돌려 씩 웃으며 아이는 검사실로 들어갔다.



그래! 두렵고 싫은 건 온몸으로 거부할 수 있지... 어쩌면 그게 날 지키며 사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육아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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