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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Sep 19. 2023

엄마, 우리 뭐 먹어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

차분히 글 쓰는 시간이 참 좋은데 요즘은 그 좋은 시간을 도통 누리질 못한다.


매일매일이 벅차다. 다람쥐 챗바퀴 같은 일상이지만 그 와중에도 수없이 많은 문장과 단어들이 말을 걸어온다는 게 기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간신히 메모만 할 뿐 그것들을 연결해서 글 한 편 제대로 완성하기 어려운 날들이다.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내 무거운 하루는 시작된다.

자꾸만 조바심이 나고 초조해져서 나의 움직임은 부산스럽기 짝이 없다. 일단 세탁기부터 돌려놓고 고아들 아침을 챙겨준다.

아이가 밥 먹는 동안 나는 부랴부랴 씻는다. 그 뒤를 이어 식사를 마친 아들이 씻으러 들어간다.

우리 집에서 화장실 사용하는 시간이 가장 긴 고딩아들은 30분 넘게 걸려서 나오고 그 뒤를 이어 남편과 딸아이가 차례로 씻고 나오는 동안 나는 빨래를 개고 빨래를 널고 청소기를 돌린다.

그 외에도 설거지를 하거나  쓰레기통을 비우거나.. 현관문을 나설 때까지 종종거리며 움직여야 한다.


2시정도의 아침시간을 집에서 정신없이 보내고 난 뒤 남편과 나는 가게로, 아이들은 학교로 뿔뿔이 흩어진다.



9시쯤 가게에 도착하고 나면 그때부터 내 종종거림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9시 30분에 출근하는 아르바이트생 금희 씨가 오기 전, 

나는  안치고 청소기 돌린다. 가게는 엄청 넓진 않지만 그렇다고 좁지도 않다.

날이 좀 선선해졌다지만 아직은 청소기 돌릴 때 땀이 삐질삐질 난다.

 

금희 씨가 오면 나는 식구들 식사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하루 중 가장 곤스러운 순간이다. 내 식구 끼니 챙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가게 식구들 식사준비는 내게 있어서 그야말로 난이도 최상의 미션이나 다름없다.

 매일의 메뉴를 고민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문제는 식사준비를 뒷주방 휴대용 버너를 이용해서 하다 보니 화력도 약한 데다 국이든 찌게든 뭐 하나가 끝나야 다른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게 무지 답답하고 속 터지는 노릇이.


그러나 어찌 됐건 직원들을 굶길 수는 없는 일이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든 해내야 한다.

만만한 게 된장찌개, 김치찌개에 가끔 닭조림이나 소고기뭇국, 미역국, 청국장찌개 같은 것들인데 청국장은 아르바이트생 금희 씨가 못 먹는 음식 중 하나이고, 미역국은 뭐든 잘 드신다는 주방 면장님이 유일하게 못 드시는 음식이란다.ㅠㅠ 

그것들을 빼고 나니 내가 만만하게 할 수 있는 음식종류 범위는  협소해질 수밖에.


엄청난 부담감으로 해낸 음식치고는 찌개나 국에 생선구이나 프라이가 다인데 누가 보면 진수성찬이라도 차려내는 줄 알겠다.

반찬도 대부분은 수산시장 내에 있는 반찬가게에서 공수해 것으로 내가 한 음식은 두세 가지가 전부인데

왜 이다지도 벅차고 힘든지 모르겠다.


다행인 건 음식타박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 그래서 오히려 미안하고 자꾸 신경이 쓰인다.

금희 씨한테 음식 간 괜찮냐고 걱정스럽게 물었더니

"언니, 저는 제가 한 거 빼고는 다 맛있어요. 국도 맛있고 반찬도 맛있고 음... 내 입엔 맛없는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까르르 웃는데 그 웃음소리에 턱밑까지 차올랐던 부담감과 걱정들이 잠시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다.

그래... 남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는....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 가는 얘기... 그만큼 밥 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임이 틀림이 없다.


그렇게 직원들과 한 끼 식사를 마치고 나면 나는 또 하나의 산을 넘은 기분에 잠시 후련해하다가 또 다음 끼니를 걱정한다.

정작 애들 밥이 문제인데 가게에서 고군분투하는 동안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한편으로 밀려난다. 그게 참 마음 아프고 속상한 일이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서 막무가내로 견뎌내는 수밖에 없다. 애들도 나도....


먹고살기 위해 벌여놓은 일이지만 매 끼 먹는 문제로 사투를 벌일 줄 몰랐다.

일하는 건 견딜만하다. 손님 대하는 일도 직원과의 관계도 수산시장보다는 훨씬 견딜만한데 문제는 밥이다. 이 밥과의 전쟁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정신없이 점심장사가 끝나고 또다시 돌아온 우리들의 식사시간~~

고민 끝에 오늘은 삼겹살을 구워 먹기로 한다.

그러나 고기 굽는 틈틈이 손님은 들어오고 홀과 뒷주방을 오가며 한바탕 부지런을 떨어보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약간 식은 고기로 늦은 점심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뭔가를 먹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며 잠시 진한 커피로 위안을 삼는다.


브레이크타임 없는 가게지만 하루 중 가장 한가한 시간이 잠시 찾아오고 나는 글을 쓸까...  아님 두 가게 잡다한 영수증정리와 정산을 할까..

고민하는 사이 또다시 손님은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조금의 틈이라도 생기면 한 두줄의 글이라도 써보려 노력한다.

그렇게 몇 줄의 글이라도 쓰고 나면 약간의 뿌듯함이 밀려오지만 한편으론 그 시간에 반찬 한 가지라도 만들면 내일 아침이 편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어느 틈에 비집고 들어온다.

마치 갓난쟁이 낮잠 잘 때 아이 옆에서 밀린 잠을 잘지 아님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할지를 늘 고민해야 했던 그 시절과 비슷한 것 같다. 어떤 걸 선택해도 늘 아쉬움은 남았던...





하루 길다.

짧은 듯 긴 하루의 끝에는 어김없이 아들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엄마, 우리 저녁 뭐 먹어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뭐라고 답해야 할까...






#자영업 #삶 #글로성장연구소#별별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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