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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의 카톡

이제 그만 좀 보내시길

by 순임이


하고 싶은 말을 가슴에 담아두는 법이 없다.

어떤 식으로든 표현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

나의 시어머니다.

오늘도 장문의 카톡을 보내왔다. 퇴근길에.

카톡창을 열고 싶지 않았지만 예의상 읽은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핸드폰 화면을 터치했다.

역시나 길고도 긴 글이다.

한 화면에 다 담기지도 않아서 전체 보기를 눌러야 한다. 하루 종일 얼굴을 마주하고 일하는 것도 모자라 퇴근 후에는 이렇게 긴 장문의 문자를 마주해야 하는 게 어느새 내 일상이 돼버린듯하다.

읽고 싶지 않은 내용들이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내 속을 이리저리 마구 휘저어놓는다.




남편과 최근 마찰이 좀 있었다.

(말이 좋아서 마찰이지.)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이 사과를 하지 않으니 나 또한 좋게 대할 수가 없었다. 일에 관련된 기본의사소통만 한채 무덤덤하게 지낸 지 열흘은 된 것 같다. 성격상 싸우고도 오래가는 스타일이 아닌데 이번만큼은 의도치 않게 좀 길게 가 했는데..


그 꼴을 두고 보기가 어지간히 심기가 불편하셨나 보다.



요즘 내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당신 아들 대하는 게 억지스러워 보여서 걱정스럽다고 한다.

마음에 차지 않겠지만 그래도 전보다 나아지는 게 보이고 나름 노력하니 이쁘게 봐줄 수 있지 않냐고.

혼자인 것보다는 그래도 둘이 나으니.....

.....

........

..........

...........




보기 좋게 포장된 말들이 어지럽게 난무하며 다 널 생각해서, 네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서라고 한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배배 꼬인 창자가 그런다.


"모르면 좀 가만히 계세요."




얼마나 더 속없이 웃어야 하는 걸까.

당신 맘 편하려고 웃고 지내라고,

당신 아들 잘 대해주라고

차라리 꼭두각시나 되라고 하지.




아무 일없이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고 정말 아무 일이 없는 게 아니다.

단 하나도 쉬운 것 없는 요즘, 하루하루가 외줄 타기 하듯 아슬아슬하다. 쓰러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자꾸만 웃어보란다.

활짝 더 활짝.

그래야 당신 맘이 편해진다고.



다 내려놓고 싶다.


내가 쌓아놓은 탑이

내가 벌여놓은 판이

우물쭈물 내가 했던 선택들이

흔들흔들 위태롭게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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