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고 불러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
한 40년은 된 거 같지? 아홉 살이었던 내가 마흔 후반이 되었으니.
그동안 잘 지냈어 아빠? 그곳에선 편안해?
아빠는 여전히 그 얼굴 그대로 하나도 안 늙어있겠네.
아빠 딸은 많이 늙었어. 아마 나중에 만나면 못 알아볼 수도 있을 거야.
그러니 꿈속에 가끔은 좀 나타나주라.
얼굴 잊어버리지 않게.
올 가을은 거의 매일 비가 왔어.
날씨 탓인지 유난히 힘든 가을을 보내고 있는 중이야 아빠 딸은.
논바닥에 누렇게 익은 벼가 힘없이 누워있는 걸 보며 어제는 하루 종일 펑펑 울었어.
팔다리에 힘이 다 빠지도록.
울다가 울다가 탈진해서 손가락이 오므라들어서 펴지지 않을 정도로.
그래 맞아. 아빠 기억하네.
아빠 죽은 날도 난 그렇게 울었었지.
그 뒤로 처음이야 그렇게 울어본 게.
오늘은 하루 종일 아빠 생각이 났어.
오랜만에 아빠가 써놓은 유서도 꺼내보고 또 한바탕 눈물바람이었지 뭐.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아빠 필체가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게 신기해.
편지봉투는 누렇다 못해 시커멓게 변하고 편지지는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데 말이야.
난 오랫동안 아빠를 잊고 살았어.
아니 잊은 척하고 살았지.
근데 살다 보니 아빠가 이렇게 그리워지는 날도 있네.
아빠, 궁금하지 않아?
아빠가 그렇게 가버리고 남은 식구들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 아빠는 다 보고 있었나?
그럼 궁금한 건 없겠네.
그래도 나는 얘기하고 싶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빠한테 다 털어놓고 나면 뭔가 정리가 될 것 같아.
내 지난 삶이, 내 현재의 고통이.
그러니 지루해도 좀만 참고 들어줘 아빠.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