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마흔여덟

by 순임이


아빠,

여긴 한국이야.

그때 떠날 결심을 하고 온 게 한국이고 그로부터 25년이나 흘렀어.

세월 참 빠르지.

그동안 많은 것이 변했어.

할머니,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한때 아빠의 장인, 장모였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돌아가셨어.


돈 벌려고 왔던 이곳에서 나는 결혼을 하고 애도 둘이나 낳았어.

큰 애가 아들, 작은 애는 딸.

아들은 고3이고 딸은 이제 중1이야.

남편은 뭐 하는 사람이냐고?

아빠 사위는 요리하는 사람이야.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아.

일식요리사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웍을 들고 중화요리를 하고 있더라고.

지금은 중식당을 운영하고 있어.




아빠, 처음 아빠한테 편지를 쓰기 시작할 때는 내 속에 가득 차 있는 것들을 모조리 토해낼 심산이었어.

그래서 그것들을 다 토해내고 나면 뭔가 길이 보이고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쓰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쓰길 잘한 것 같아. 이만큼이라도 덜어내고 나니 숨이 쉬어져. 도망치고 싶던 마음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는듯해. 멀리 던져버리고만 싶던 삶의 이런저런 문제들을 다시 껴안을 힘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아. 아빠 덕분이야. 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못다 한 이야기는 풀어내고 싶은 날이 또 올 거야. 주저리주저리...

그때까지 우린 각자 속한 세상에서 충실하게 살아가야겠지. 아빠는 아빠답게, 나는 나답게.



나중에 만나면 그땐 아빠 얘기 들려줘.

아빠의 고통과 슬픔 그 모든 것에 대하여.

하고 싶은 얘기가 얼마나 많을지 짐작도 안 가지만 난 다 들어줄 자신이 있어.


아빠와 함께했던 세월 우리 모두에게는 따스한 햇살과도 같았어. 노곤노곤 졸음에 겨운듯한 찰나의 순간이었지.

젓가락 장단에 맞추어 부르던 구성진 노랫가락, 엄마와 다정히 추던 부르스,

가끔 큰삼촌과 나누던 술자리에서 느껴지던 유쾌함, 얼굴만큼이나 잘 생긴 목소리,

그게 우리 아빠였어.

아빠가 빛나는 사람이었음을 나는 기억해. 그 빛이 너무 빨리 어둠 속에 사라져서 슬펐지만

내게 남은 기억이 따뜻해서 미워할 순 없었어.


사랑해 아빠.


만약 다음 생애가 있다면,

그래서 우리 네 식구 다시 모여 살 수 있 날이 온다면 , 그땐 부디 아빠 자리를 오래오래 지켜줬으면 좋겠어.

그땐 내가 아빠의 햇살이 되어줄게.


그때는 우리 식구 모두가 편안함에 이르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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