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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Apr 21. 2023

나의 새할아버지

비록 선생님은 못되었지만...

60세 즈음 할머니는 재혼을 하셨다. 노인회 회장이셨던 새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10살이나 많았지만 두 분은 여간 잘 어울리는 게 아니었다.


 새할아버지는 나를 친손녀처럼 예뻐해 주셨다.



 "이선생.. 이선생.." 하고 부르는 장난스러운 호칭이 싫지 않았다. 커서 꼭 선생님이 되라고, 영락없는 선생감이라고 늘 입버릇처럼 얘기하셨다.


"결혼은 하지 마. 여자는 시집가면 힘들어. 뭣 하러 힘들게 살아? 자유롭고 멋지게 살아야지!"


할아버지 특유의 말투로 하는 그 모든 이야기가

나는 다 맘에 들었다.



세상 무뚝뚝한 나였지만 이상하게 할아버지 앞에서 만큼은 애교도 부릴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채널을 틀어 드리고 즐겨 드시는 간식도 사다 드리고 가끔 할아버지 얼굴에 로션도 발라드렸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겉으로는 질색하는 척하면서도 즐거운 표정을 숨기기 못했다.


체육시간을 끔찍이 싫어하던 내가 그 스트레스로 끙끙대는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는 학교 체육 선생님을 찾아가 부탁하신 적도 있었다. 우리 손녀가 체육시간을 걱정하느라 제대로 밥도 못 먹으니 선생님께서 좀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물론 선생님은 전혀 봐주지 않았지만 그 일 이후 나는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체육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든든한 빽이 생긴 기분이었다.



모자를 항상 옆으로 비스듬히 돌려쓰시고 자전거 타고 다니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뉴스와 축구경기를 즐겨 시청하고 매일 신문을 읽으시고 멋들어진 필체로 한자를 쓰셨던 할아버지... 이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



"이선생!"하고 부르던 그 음성만이  귓가에 남아서 때때로 나를 눈물짓게 한다.







#할아버지 #이선생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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