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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Apr 23. 2023

하마터면 남의 집 아이 첫 소풍을 망칠 뻔했다


소풍계절이 다가오니 심심치 않게 소풍도시락 사진들이 눈에 띈다. 그걸 보면서 지난가을 아찔했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이른 아침, 아이들 등교준비로 분주한데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앞동에 사는 친구다.

"어.. 왜?"

전화기를 귀와 어깨사이에 갖다 붙인 채 아이 물병에 물을 받았다.

"나 내려가서 받아오기만 하면 되는 건가?"

"응? 뭘 말이야?"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뭐긴 뭐야? 우리 소율이 도시락 싸주기로 했잖아?"

"모레잖아... 소풍이???... 오늘이었어?"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진짜 오늘이라고?"


믿고 싶지 않아 다시 한번 물었다.

"어. 일단 끊어봐. 나 소율이 친구 엄마한테 김밥 좀 얻을 수 있는지 전화 해보게."

친구 목소리가 다급하다.


멍하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몇 주 전부터 친구는 아이 소풍도시락을 걱정했다. 코로나가 끝나고 드디어 첫 소풍을 가게 된 아이는 잔뜩 들떠 있는데 엄마는 도시락을 걱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도시락 전문점에 주문하려 했더니 대량 구매를 해야 해서 어렵고, 그렇다고 직접 김밥 쌀 자신없고... 만날 때마다 하소연을 했다. 결국 듣다 못한 내가 그날 도시락을 싸주기로 했다. 대신 예쁜 도시락은 기대하지 말라고 했었다. 친구는 고맙다며 나에게 뇌물? 까지 주었는데.....


그랬는데!


소풍날짜를 분명히 들었는데 왜 내 멋대로 금요일이라 착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텅 빈 채 오락가락 방안을 서성이었다. 시계를 보니 8시 5분! 소풍 갈 아이는 집에서 8시 30분에 나가야 한다고 했다.

25분 동안 뭘 해야 할지 미친 듯이 생각했다.

집 근처 김밥 집은 일찍 문을 열지 않는다. 다른 김밥집을 가려면 택시를 타 하는데  택시 호출하는 시간이며  왔갔다 하는 시간, 김밥 주문해서 바로 나온다 해도...... 도무지  답이 안 나온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옷을 주워 입고 지갑과 핸드폰을 챙겼다.


"얘들아, 엄마 급한 일 생겨서 그러는데 니들끼리 알아서 학교가~~"


문을 박차고 나와 엘리베이터 눌렀다.

처음으로 15층에 사는 게 한스러웠다. "15.. 14.. 13.. 12..."빨간 숫자를 노려보며 속으로 빨리빨리를 외치는 순간 머릿속에 퍼뜩 편의점이 떠올랐다.

'그래! 편의점이 있었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을 향해 미친 사람처럼 내달렸다.

달리면서 친구에게 전화했다.

"김밥 구했어? "

"아니. 전화를 안 받아."

"그래? 나 지금 편의점 가고 있으니까 기다려봐."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죽을 지경이었다.

"아냐.. 관둬. 그냥 애 아프다고 선생님한테 얘기하고 소풍 안 보내려고."

친구의 체념하듯 하는 말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무작정 뛰여 들어갔다. 정신 나간 여자처럼 헐레벌떡 김밥코너로 가보았지만 거기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채 텅텅 비어있었다.

주저앉아 울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과자며 샌드위치를 주워 담았다. 계산대로 뛰여가 계산을 마치고 나온 나는 또 미친 듯이 다른  편의점을 향했다. 달리기를 못해서 늘 학교에서 구박받던 내가 아니었다. 죽어가는 사람이라도 살리려는 듯 절박한 심정으로, 초인적인 힘으로 내달렸다.


두 번째 편의점으로 뛰여 들어가자마자 김밥코너부터 보았다. 다행이다. 김밥이 세줄 남아있었다. 누가 집어갈세라 그것들을 몽땅 손에 거머쥐었다. 옆에 마카롱이 보였다. 마카롱도 집어 들고 그  옆에 미니 통조림까지 보이는 대로 담았다. 물과 음료수까지 챙겨서  계산을 하고 나와 또 미친 듯이 내달렸다.

이제 집으로 가서 도시락통에 최대한 허접해 보이지 않게 담아내기만 하면 된다.

짧은 다리를 한탄하며 이 악물고 뛰었다. 핸드폰을 보니 8시 21분이었다. 이건 기적이나 다름없다!


집에 도착하니 25분~

부랴부랴 도시락통을 꺼내고 집에 있던 사과를 깎고 세팅을 시작했다.

아직 학교에 안 간 아이들과 출근 전인 남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체 무슨 일이냐며 물었지만 대답할 여유 같은 건  나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김밥 세줄 포장지를 전부 뜯어냈다. 편의점 김밥이지만 세 가지 맛 골고루 맛보게 하고 싶었다. 후들거리는 손으로 김밥 꽁다리 부분과 흐트러진 부분들을 빼고 깔끔하게 잘라진 부분들을 골라 도시락통에 조심조심 옮겨 담았다.

김밥세팅은 끝났다..

깎아놓은 사과와 편의점에서 사 온 복숭아 통 졸임을 담아내니 과일세팅도 끝났고..

남은 도시락통에는 뚱카롱 2개와 샌드위치를 작게 잘라 채워주었다.

이로써 도시락 세 칸이 다 채워졌다!

핸드폰으로 사진 한 장 찍어서 친구한테 전송하고

부랴부랴 도시락가방에 도시락을 채워 넣고 물과 음료수를 챙기면서 전화기 통화버튼을 눌렀다.

"얼른 내려와!!!"




친구 아이 소풍가방에 도시락을 넣어주며 말했다.

"소율아, 이모가 미안해. 내년에는 이모가 꼭 집김밥 싸줄게. 소풍 잘 다녀와!"

"감사합니다 이모, 전 이 도시락도 정말 맘에 들어요. 제가 소풍 다녀와서 이모한테 한턱 쏠게요."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엄마 손을 잡고 학교로 뛰어갔다.

8시 37분이었다!!!


30분 동안에 나는 1년 치 쓸 에너지를 다 쓴 기분이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집으로 돌아와 방바닥에 널브러졌다.


띵똥! 문자 한 통이 들어온다.

"고마워. 그 짧은 시간에 이런 게 가능하다니... 역시 대단해!"

친구의 문자였다.



'그래.. 그걸 알면 내년부터는 옆구리 터진 김밥이라도 네가 직접 좀 쌀래 이년아!!!!'


절박했던 내 마음의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날 살린건 편의점이었다.



#도시락 #소풍 #편의점 #하마터면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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