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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Apr 29. 2023

내 맘대로 가지밥

추억 한 그릇



어린 시절 기억 속 한 장면엔  한여름의 푸르른 텃밭이 있다. 키 높은 오이넝쿨 속에 오동통 길쭉한 오이와 독이 오를 대로 오른 검푸른 고추와 동글동글 빨강, 노랑 토마토... 상추, 대파, 가지가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다.

늘 내가 먹는 속도를 못 따라잡던 느리게만 익어가던 토마토... 침을 삼키며 빨갛게 무르익길 기다리던 그때를 떠올리웃음이 난다.

눈만  뜨면 토마토 밭으로 달려가는 나에게 할머니는 종종 심부름을 시켰다.


"선아... 오이 한 개만!"


손이 잘 닿지 않는 넝쿨 속 오이가 유난히 탐스럽게 보여 손을 뻗다 보면 맨살의 팔뚝엔 어김없이 미세한 긁힘 자국들이 생기곤 했다.

오이를 배달하고 돌아서면 할머니의 주문은 또 이어졌다. 대파 하나, 고추 몇 개, 상추 조금...

식사준비하는 할머니를 나는 그렇게 집과 텃밭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거들었다.


저녁메뉴로 할머니는 곧잘 가지밥을 하셨다. 영롱한 자줏빛의 가지 몇 개를 따다가 한솥 가득 가지밥을 한 날이면  나는 평소보다 두 배의 양을 먹었다. 식어도 맛있는 쫀득한 식감의 가지밥에 양념간장을 얹어서 먹던 그 환상적인 맛을 못 잊어 오늘은 나도 할머니표 가지밥에 도전해 보았다.




할머니는 가지밥 할 때 꼭 찹쌀을 사용했다. 일반쌀과 섞기도 하고 찹쌀로만 할 때도 있었는데 찹쌀 비율이 높을수록 내 입에는 더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도 찹쌀을 훨씬 많이 넣기로 했다. 일반쌀을 조금이나마 섞은 건 어디까지나 식구들 입맛을 고려한 나의 배려다.  깨끗이 씻은 쌀은 평소보다 물을 조금 적게 잡은 상태로 압력밥솥에 잠시 대기시킨다.(가지가 수분이 많은 채소이기도 하고 찹쌀이 많이 들어간 관계로 물은 평소보다 적게 잡는 게 좋다.)


가지 두세 개를 어슷 썰어서  돼지고기 살코기 부분과 함께 넣고 볶는다. (고기는 안 들어가도 상관없음) 소금 조금 넣고 숨이 적당히 죽을 정도로만 볶아준다. 볶아진 가지를 조금 전에 씻어둔 쌀 위로 골고루 부어준다.

압력밥솥 뚜껑을 닫고 취사를 누른다.

정석대로라면 볶은 가지는 밥이 거의 되어갈 때쯤 넣어야 하는 게 맞지만 전기밥솥은 그게 불가능하니 첨부터 같이 넣을 수밖에 없다. 가지 형태가 조금 뭉그러지는 것 외엔 딱히 문제 될 건 없다. 오히려 나는 이게  좋다.


밥이 되는 동안 양념간장을 만들어준다.

마늘과 대파를 썰어서 고춧가루와 함께 간장에 버무려낸다. 간장에 푹 잠기는 것보다는 자작한 상태가 짜지 않고 맛있어서 간장은 많이 넣지 않는다.(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입맛임)


잠시뒤 취사가 끝났다는 알림이 울리고  밥통 뚜껑을 열어젖혔다. 가지향과 찹쌀향, 그리고 고기까지  어우러져 구수한 냄새가 진동한다.

물조절도 이만하면 성공적인 편인 것 같다.

너무 질지도 되지도 않은 적당한 상태의 가지밥을 골고루 저어서 그릇에 담아냈다.






어제 무친 마늘종 무침이랑 먹으니 양념간장이 필요 없는 것 같다..


내가 했지만 맛있다!(자화자찬ㅎㅎ)

물론 할머니표 가지밥에 비할 수는 없지만 아이들도 잘 먹어주니 이만하면 성공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초간단 음식이지만 왠지 제대로 한 끼를 챙겨 먹은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하다.

할머니를 추억하며 오랜만에 해 본 가지밥!

올여름엔 좀 더 자주 해 먹어야겠다.




#가지밥 #추억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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