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무언가, 그건 무엇이었을까
어느 날, 여느 시간대처럼 나는 자주 가던 식당에 가서 김밥을 주문한다. 항상 봉지에 들어가는 김밥은 참치김밥. 오천 원을 현금으로 내고, 이천 원을 거슬러 받았다. 서울의 김밥은 쓸데없이 비싸. 여기는 참기름도, 깨소금도 안 뿌려주는 게 항상 거슬린단 말이지.
검은 봉지를 손에 쥐고, 따가운 햇볕과 텁텁한 공기 속에서 나는 선장이 되어 있었다. 빨리 아스팔트 파도를 헤쳐나가지 않으면 난파될지도 몰라……. 급하게 노를 저어 가던 나는 갑자기 어느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오백 원만.”
작은 목소리라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흘려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분명했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니 할머니 한 분이 허름한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건물 옆 작은 공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었다. 티셔츠는 하양과 노랑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었고, 바지는 더운 여름날에는 맞지 않은 무거운 회색빛이 겉돌아 보는 사람의 마음도 덩달아 무거워지는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지나쳤다. 그리고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왠지 모를 뭔가가 움직였다. 최근에 들었던 중용 수업에서 교수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나는 속더라도 누군가 길거리에서 나에게 푼돈을 달라고 하면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건 사기당하는 게 아닌가요? 엄벌을 처해야죠. 교수님.”
“적어도 나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이 팍팍하잖아요.”
멍해지는 생각들. 속기는 싫어. 근데, 그러기에는 교수님 말도 맞아. 우유부단한 내 발걸음 때문에 항해를 지속하던 쾌속선은 아스팔트 바다에서 표류하였다. 이윽고 움직이는 발걸음. 할머니에게 손을 건넨다. 그리고 천 원짜리 지폐 하나를 건네주었다.
“내 줄줄 알았어. 고마우이.”
빙긋 웃는 할머니를 뒤로 한 채로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다음번에 다시 만나면 어떡하지. 저 할머니한테 버릇을 잘못 들이는 게 아닌가. 나쁜 생각이 내 머릿속을 막 헤집는다. 그리고 다시 멍해지면서 드는 생각.
난 왜 이렇게 된 거지.
오늘 할머니와의 만남으로 난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랑일 수도 있고, 자애일 수도 있고, 걱정일 수도 있고, 증오일 수도 있다. 그리고 정말 보이지 않았던 나 자신을 잠시 볼 수 있었다. ‘나 자신’은 이후 빠르게 내 무의식으로 들어갔고, 나는 다시 무더운 도시 속에서 급히 항해를 서둘렀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