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자살을 꿈꾸는 학생 이야기
“에고(Ego)와 페르소나(Persona), 심리학 개론을 대학교 수업에서 들었다면 한 번 쯤은 들어봤을 이야기. 아마 융인가 하는 양반이 썼던 내용일 거다. 융인지 용인지 내가 알 게 뭐람. 중요한 건 페르소나에 관련된 이야기. 흔히 현대 사회에서 말하는 가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오늘 너희들을 이 자리에 모았다. 어이, 거기 3분단 뒤에서 둘째 줄. 그래 너. 오늘 특별 수업이라고 긴장 풀린 건 알겠는데, 그렇게 대자로 뻗어 있으면 호랑이도 물어가겠다. 잠시 복도로 나가 있어라. 너네들, 수능 끝났어도 아직 학생이야. 사람이 말을 하면…….”
지독한 학교다. 수능 날까진 말 위에서 채찍질하는 로마 병사처럼 우리를 그렇게 들들 볶으며 윽박지르더니, 끝나고나니 초청 강의랍시고 우리 동네 각설이보다 못한 사람을 불러 이렇게 괴롭힌다. 복도는 냉기로 가득 차 손목이 시리다. 대체 고등학생의 인권은 누가 챙겨주는 거지? 인권위에 진정서라도 제출해야 하나?
사실 난 요즘 자살을 계획 중이다. 수능 가채점을 부모님 몰래 했는데, 성적이 너무 비참하다. 세상에 직전 모의고사보다 90점이 더 떨어지다니. 이래 가지곤 내가 원했던 대학은커녕 과도 들어갈 수 없다.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진 전쟁 영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나를 본다면 자네는 어느 전장에서 이렇게 심하게 굴렀는가 하고 인사말을 건네겠지. 이렇게 마음이 망가진 상태에서 저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아저씨의 강연은 말 그대로 고통이다.
근데 자살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막상 구체적인 행동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 그거야 뭐 우리 집안 내력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뭐 어떻게든 굴러간다. 혹은 나는 괜찮다고 하는 이유 없는 긍정이 몸에 배여 있어서다. 사실 도피할 수 있다면 그냥 도망치고 싶다. 엄마랑 아빠가 내 성적표를 본다면 또 몇 시간 설교를 들어야 하겠지? 아. 짜증 난다. 아우 시펄!
학생 A는 발을 구르며 힘껏 점프했고, 그 순간 선생님이 문을 열었다.
"야, 넌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추워서 교실로 부르려고 했더니. 그리고 머리 꼴은 그게 뭐야. 얼른 머리끈으로 머리 묶어. 정신 좀 차리면 교실로 다시 들어와."
머리가 헝클어지든 망가지든 뭔 신경이야. 이 망할 세상에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머리에 손이 갔다. 창문으로 비치는 어스름한 내 모습은 오뉴월에 나오는 귀신처럼 부시시하다. 머리끈을 손가락에 끼우고, 머리를 잘 정돈한 다음 뒷머리에 쏙 넣었다. 그리고 그 순간, 창문 너머로 보이는 운동장의 비둘기들, 하늘에는 이름 모를 철새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자유란 무엇일까. 새를 보고 있으면 항상 자유가 떠오른다. 그 순간 머리속에 최근에 봤던 짤방이 떠올랐다. 커다란 코끼리가 자기 몸의 백 분의 일도 안되는 쥐를 보고 놀라는 그림, 그리고 커다란 사슬에 발목이 묶인 채 성장한 코끼리는 그 사슬 길이 만큼 움직이지 못한다는 이야기.
순간 울컥, 마음에 열이 올랐다. 학교가 나도 모르게 거대한 사슬처럼 보인다. 나는 사실 그 사슬에 묶여 있는 코끼리가 아니었을까. 발을 복도 신발장에 걸치고 내디딘다. 순간 끊어지는 사슬. 차가운 공기가 더 시원해진다. 하승진은 왜 이렇게 좋은 공기를 지 혼자 느꼈던 거야. 복도는 인적 없이 스산한데, 창문을 열자 바람이 더 차갑게 들어왔지만, A에겐 그건 이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발을 딛는다. 뻗는다. 나와 학교와 세상을 규정짓던 선 밖으로 내 발가락과 발목이 드디어 자유를 되찾는다. 창문 턱에 발 하나만 걸쳤을 뿐인데, 이렇게 시원하다니. 왜 이렇게 좋은 걸 나만 몰랐을까? 그리고 다른 한 쪽 발을 옮겨야…….
"뭐 하는 거야! 당장 안 내려와!"
학생 A가 4층 복도에서 뛰어내리려는 순간, 특별 강사 B가 교문을 열며 급히 외쳤다.
불행히도, 그의 반응은 A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A가 주도권을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쥐게 된 것이다.
그리고 A는 알 수 없는 외마디 외침을 남긴 채 날아오르듯 떨어졌다.
그녀의 외침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코끼리는 무엇이며, 융은, 에고와 페르소나는 무엇이었을까.
여기 그냥 학생 한 명이 죽어있을 뿐인데.
“야! 거기 3분단 뒤에서 둘째 줄, 칠판 안 쳐다봐? 뭐 쓰고 있어?”
“아, 죄송합니다.”
아영은 선생님에게 지적을 듣고 황급히 종이 한 장을 서랍에 넣으며 고개를 푹 숙인다. 사실 수능이 끝나고 나서 긴장이 풀린 탓도 있지만, 이런 자기 자신이 요즘은 그렇게 싫지만도 않다. 이 참에 겨울에 공모전이 있던데 투고라도 해볼까 그녀는 다시 머리 속으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넌 복도에 가서 잠시 머리 좀 식히고 와.”
“쌤… 복도 너무 추운데요.”
“그래, 복도 너무 춥지. 그런데 어쩌냐. 넌 복도 없어서 안 되겠다.”
“아, 쌔엠”
교실 안에 학생들의 야유와 웃음이 반쯤 섞이며 우왕좌왕 시끄러워진다. 그리고 아영은 창문을 한동안 응시하다 선생님의 외침을 듣고 빙긋 웃는다.
- 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