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 프랭키의 소설 '도쿄타워'에 나오는 엄니가 좋았다.남편과 몇십 년의 별거를 계속하며 자신의 힘으로 자식을 키웠지만 결코 아들에게 '너는 꼭 성공해야 돼.' 같은 무거운 말을 하지 않았다. 부담을 주지 않고, 불행을 아이에게 전염시키지 않은 것이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지극히 사랑하지만 사랑을 참을 줄 알았다. 희생이 신파극이 되지 않으려면 엄니 같아야 했다.
아빠는 2000원짜리 밥을 먹었다.
사장님이 되고, 동네에서 잘 사는 집이 되고, 번쩍번쩍한 큰 아파트로 이사하고도 종종 그랬다. 그 식사에는 밥과 3~4가지 반찬이 나온다. 3000원짜리 밥에는 된장찌개가 포함된다. 매번 가장 싼 밥을 비우고 가는 아빠가 안 돼 보였는지, 한 번은 식당 아주머니가 다른 손님이 먹다 남긴 찌개를 아빠 쪽으로 놓아주셨다고 했다. 몇 술 안 뜬 된장찌개였으리라 짐작은 한다. 고맙습니다, 하고 먹고 왔노라고, 그 이야기를 술 먹고 와서 했다.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 나는 엉엉 울었다.
자정을 넘긴 시간, 전화를 받고 달려간 병실에서 꺼이꺼이 울었다. 엄마는 옆 병실에 피해가 된다며 그만하라, 했다. 하지만 나는 울었다.
사람이 죽을 때 귀가 가장 늦게 닫힌다는 걸 알게 된 어느 날,자식의 애달픈 울음소리를 듣고 가셔서 다행이라는생각도 했다. 장례식에서도 눈물, 콧물, 침을 질질 흘렸다. 둘도 없는 다정한 부녀사이였던 것처럼 성경을 꼭 쥐고 한없이 울었다.
이것은 신파가 아니다.
아빠와 나, 이상한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밉기만 했으면. 마음이 초콜릿과 바닐라가 섞인 흐린 지점에 있는 것이 문제다. 바닐라는 바닐라, 초콜릿은 초콜릿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1972년, 비행기 사고가 있었다. 영하 40도, 눈으로 덮인 깊은 산에서 조난을 당한 이들은 생존을 위해 선택해야 했다. 이대로 죽을 것인가. 이미 죽은 자의 인육을 먹고서라도 살아남아야 할 것인가를. 비행기 사고 실화를 다룬 영화 '얼라이브'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중간을 택한 자에게는 지옥밖에 없다고. 무릎을 탁, 친다. 아, 그래서 나의 지옥행이 시작되었구나! 가족이란 건 왜, 어정쩡한 중간에 있는 걸까.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실천하기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자식은 대부분의 아버지에게 이 격언을 실천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