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실의 그림책 「마트료시카」에는작가가 가장 너른 품을 주었다는 첫째부터 입이 없는 일곱째까지, 지난 시간이 겹겹이 쌓인 마르료시카가 나온다.
하나이면서 일곱인 그 인형,무엇을 품고 있는지 유심히 보아야 하는 묘한 아이, 마트료시카는 아빠를 닮았다.
매일 새로운 아빠를만난다.
하필 출산 후 입원중일 때 그 다채로운 모습을 알아가야만 하다니, 나는 버겁다. 첫 아이때, 긴급출산을 했다. 당시 6인실을 쓰느라 산후조리에 폭망한 나는, 둘째 낳기 전괜찮은 1인실 예약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예약해 둔 나의 아늑한 병실에 아빠가덤으로자리 잡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아빠와 엄마는밤새워 나눌 이야기가 많다.
고성, 육탄전그리고몰려오는 간호사분들, 이 세 과정이 잘 빚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고 돈다.젖이 퉁퉁부는데 짜내지 못해젖몸살이 시작되었고,환자복 위로는 초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몸도 마음도그만펑, 터질 것 같아 입에서 절로 말이 흘렀다.
나가(세요).
군손님들에게 퇴거를 명했다. 둘은 그날 밤 다른 병실로 옮겨갔고,병원에는 가짜환자가 둘 생겼다. 집에나 가시지.
엄마는 정신을 붙잡고, 아빠는 반성했어야 했다.
곁에있어주기를 원하지 않았다.마취가 풀린 후,스스로 모든 것을 했다. 딸을 위해 옆에 있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열 달을 품은 아이를 세상에 내놓은 직후 1열에서 보고 싶은 것이 생의 추악함은 아니다.서로를택한 것은 자식인내가 아닌바로두 사람이란 걸잊지 않았어야지.나는 밥 챙겨 먹고, 소변줄도 잘 떼내고, 장기유착이 오지 않도록 왼쪽, 오른쪽 돌아눕기도 하며부지런히 걸었다.
무통약을 안 쓰면 빨리 회복된대.
비공인 정보를 주워듣고 무통버튼을제 손으로는 한 번도 누르지 않았다. 수유콜이 오면 재깍먹이러 가고,주르륵 눈물이 흐르면무심히훔치고, 간식도 꼭꼭 씹어 남기지 않고 다먹었다.소란이 나면 알아서 출동도 간다.나는 기계처럼 정확하고 성실하다.인생이 더 나빠질 수 없게 불교로 말하면 결계를 쳤다.
그러나누가얄궂게 리플레이 버튼을 눌렀는지 몰라도아빠는 다시, 도망갔다.엄마가 쇼크로 응급실에실려간 틈에 일어난 일이었다.첫 번째 빤스런이 실수가 아니었음을, 아빠는 제대로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제 보인다.
아기가 깨어 수유콜을 받고 가던 길. 두 번을 당하니, 생경한 감각에 머리통이 얼얼하다.엄마에게 가봐야 해 젖은 줄 수없다.분유를 좀 주시라고 전화를 하는데새까만심장이조여 오는 것 같다.엄마의 신분은 정식환자로 승격되었다.
아빠는 오지 않고 있다.
믿기지 않지만,높은 염증 수치로 엄마의 수술이야기가 나온다. 엄마는 이 지경에도 아빠를기다리고 있지만아빠를 제외한 그녀의 가족들만이 곁에 있을 뿐이다.불행이 나를비켜가야 할명분은 없지만어느 막장소설에 빙의한 것이 아닌가,꿈인 양눈을 자꾸만 끔벅여본다.나를 둘러싼 흐름은 그 러시안인형처럼 기묘하기만 하다.
그는 마트료시카, 인간 양파, 8단 변신 로봇.아빠가마트료시카라면 인형을 조금도 건드리지 않고안에 뭐가 들었는지 영영 모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