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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얀 Feb 03. 2023

그날 출산 후 나는




나는 울지 않았다.

속절없이 눈물이 흐르는 일은 있어도, 사람들 앞에서 안 울었다. 우리 가족은 병동에서 요주의 인물이 됐다. 더는 유명세를 늘리지 않아도 된다.

큰 병원으로의 전원과 개복수술 이야기까지 나왔던 엄마는 극적으로 염증수치를 낮출 수 있었다. 남편이 사라진 데 이어 배를 연다는 사실에 벌벌 떨던 엄마도 한 숨 돌리고 있다. 통수를 2 연타 맞은 우리는 살아있었다. 아빠가 며칠새 두 번 도망을 가버려도 살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아빠는 또, 돌아왔다.

그 사이 엄마는 다 큰 어른의 실종신고도 했다. 정말이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많이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여기 있으면 숨이 막 콧바람 좀 쐬고 온 것이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굴었다. 콧구멍이 두 개라 숨을 쉬 것은 우리 모녀인 줄 알았는데, 똑같은 고통을 호소한다. 어디서 집어왔는지 팸플릿을 꺼내 전시회에 가고 싶다는 신박한 소리를 한다. 주 7일 일하는 불쌍한 일벌레인줄 알았는데, 알찬 여가활동으로 삶을 누리는 근사한 노인이 되어있다.



부인이 쓰러졌는데 내뺀 이유에 대해서는 차분한 논리를 들어 짧게 설명했다.


병원이라 살 줄 알았다.




나는 그냥 홍시가 먹고 싶다.

임신성 당뇨가 있어 매끼 현미밥 반공기와 약간의 반찬을 곁들였었다. 이제 내가 먹어도 아기가 위험할 일이 없으니 달달한 홍시를 입 안 가득 넣싶다. 홍시를 사러 병원 매점에 갔는데, 없다. 제 발로 가 사 먹겠다는데 꼭 홍시는 없어야만 했는지, 홍시를 사 줄 사람도 없는데 화가 나려 한다. 뼈에 바람이 들든 말든 당장 먹어야 했다. 솔솔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병원 밖으로 홍시를 찾으러 다녔다. 그렇게 노점에서 홍시 5개를 사고 회전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좀 떨어진 곳에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검정 봉지를 들고 오도카니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병원 바로 앞은 제지를 당했는지 좀 떨어진 거리에 있어 나갈 때는 미처 보지 못했나 보다.


아내가 죽었습니다.

 

그런 내용. 나보다 하루 늦게 출산한 산모였다.

병원 로비에서 그 남자, 아마도 며칠 전 세상을 떠난 한 여인의 남편을 보고 있으니 누르고 있던 내 안의 무언가가 북받쳐 오르는 듯했다. 홀린 듯 병원 밖의 그를 향해 걸었다. 위를 읽어보니 더욱 기가 막혔다. 사고 이후의 병원 측 처사까지 너무 잔인다. 나와 같은 환자복을 입고 있던 여인의 남편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진실을 밝히게 도와달라는 글에 그저 서명을 했다. 왜 죽어야 했나,  남자의 아내는 무슨 죄가 있단 말이야.


방으로 돌아와서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곧 나는 울기 시작했다. 서럽다. 원통하다. 이 눈물이 내가 처한 상황 때문인지 며칠 전 죽은 아기엄마 때문인지 모르지만 가슴을 부여잡고 펑펑 울었다. 숨죽이고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병실이 특별관리라도 받고 있는지 간호사 실습을 나온 학생같이 보이는 분이 이내 들어왔다. 그분은 내 등을 쓸어주고 안아주었다.

이렇게 예쁜 산모님이 왜 울어요... 괜찮아요.



더 힘들고 슬프고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언제나 알고 있다. 그들에 비해 내 고통이 다 해서 참을 생각은 없지만 지금 이 순간 원 밖의 저 남자가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 그것 내 마음을 울린다.




딱한 지인이 있었다.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었는데, 어느 날을 기점으로 내 마음은 차가워졌다. 나의 힘듦을 이야기했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건 힘든 것도 아니야. 나는 말이야... 블라블라


대화라는 것이 번호표를 뽑아 순번을 기다리는 것은 아닐지라도, 분명 내 차례였다. 나는 그녀의 고통에 마음 아팠고 충분한 공감을 해주었고 오래 들어주었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단칼에 끊고 자신의 말만 하려는 것을 보고 알았다. 아, 내가 너무 잘 들어준 모양이다. 그녀는 한참을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이야기했고, 나는 그것들을 다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내보냈다. 이후로도 달라지지 않길래 나는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고통의 세기, 비극의 정도를 따져 우위를 점해야 이해받을 수 있다면 지금 우크라이나 국민들 앞에 너는 무릎을 꿇어야지. 소말리아는 떻고. 우리 고통은 파리의 날갯짓 정도로 보일 텐데 말이야.

누구에게나  눈 아픈 것이 당연하다. 이런 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날, 병원 앞의 아기아빠 앞에 무릎을 꿇은 심정이었다. 내가 나았다. 홍시를 사러 다닐 육신도, 식욕도 있었다.




주섬주섬 홍시 3개를 챙다. 집에나 가버리면 좋을 부부 방으로 간다. 홍시를 좋아는 아빠에게 딸이 칼바람 맞고 사온 홍시를 내밀어 볼 것이다.


돌아보니, 여정 배우의 말처럼 인생은 서럽고, 불공평 대잔치이다.

같은 병원에 아기를 낳으러 와 갑자기 세상을 떠나야 했던 것이 내가 아닌 그녀인 것에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왜,라고 물어봐야 답은 없을 것 같다. 앞으로 나아갈 힘은 없지만 새드무비의 주인공이 아님을 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안녕. 안녕, 종교아줌마. 안녕, 양산을 쓴 미사키.
모두 안녕, 안녕. 나는 이제 여행을 떠납니다.
아파트 문을 닫고, 문을 잠그고, 방의 커튼으로 완전히 밖을 가리고, 나는 이제부터 여행을 떠납니다.
침대에 걸터앉아서 숨통을 끊겠습니다.
양손으로 입을 꾹 막고 숨을 끊겠습니다.
아, 괴로워, 괴로워. 이제 곧 죽는다. 이미 30초나 숨을 멈췄다. 이제 곧 죽어버린다. 그러나 임종의 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코로 숨이 새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다.

               타키모토 타츠히코   「N.H.K. 에 어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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