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한 지 한 달여 된 그해 가을어느 날,선득한 밤공기에 움츠려든 몸으로 파출소 문을 밀어 본다.
삼류드라마가 끝나지 않는다.
얘, 아기 낳은 지 얼마 안 됐어요! 손대지 마세요!
몸을 밀며 나가라 하는 경찰과눈을 까뒤집고 항의하는 아빠를 제외한 가족들.아빠는 그러거나 말거나 차분하게 앉아 경찰들과 이야기 중이다. 딸의 출산 중에도 도망간 위인은 어떤 동요도 보이지 않는다.아기를 떼어놓고 택시를휘리릭 잡아 타고 도착한 파출소에서 쫓기듯 밀려나고 있다. 내 등장이 곱게만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식구들이 차례로 소란을 피웠던 모양이다. '저 집 식구 또 왔구나', 느낌 아니깐.
cctv 사각지대에서 일어난 일이고, 증언이 서로 엇갈리고 있어요.
그렇지.
아빠는 역시, 머리가 좋다. 침착한 척할 수 있다. 불행이 1그람 더 늘어난다해서 대단할것이없다고 센 척을 하고 싶다. 나는 무려 남인지 한 핏줄인지 모를 정도로 심드렁하게 이 모든 것을 관망하고 있는 저 아저씨 딸이라고.
조금 지켜보더니 말이 통할 것 같다며, 파출소에서 콕 집어 나랑만 대화를 하자고 한다. 검찰로 넘어가면 감당해야 할 것들, 모든 것을 쌍방으로 만들어 놓은 아빠의 노련함과 엄마의 미련함, 파출소 안을 씩씩거리며 걸어 다니는 나머지 가족들의 모습들이 마구 섞인다.
오늘도, 가슴이 뛰는구나.
어릴 적 나는 우리 집 판사,로 불렸다.
부모의 싸움에 간섭하기를 잘했다. 언니, 오빠가 도망가버리고 나면막내인 나만은 아빠, 엄마 사이에 똬리를 틀고앉아 양쪽 이야기를 다 듣고 훈수를 두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흥분해 울고 불고 하는 것을 참으로싫어했다. 하여, 엄마 편이 되기가 어려웠다. 말 못 하고 울먹이고 가슴 치는 모습은 볼썽사나웠다. 오랑우탄이 따로 없다. 울 시간에 말을 하지,못 하겠으면 혼자서 울어버려라, 생각했다. 둘 사이에 앉아 있지 않으면 불안했고, 그 속에있으면 열이 팡팡 났다.
엄마는 원통하고 억울했으나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해 답답해 보였다.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고, 딴 이야기로 새기 일쑤에, 더듬었다. 바보같이.아빠는 당당했다. 눈앞의 여자는 스스로 바르르 무너졌다. 입술을 깨물고괴성을 지르고 바닥을 쳐대는 광기 어린 모습은 나와 엄마의 사이를 우주의 양끝으로 떼어놓는 듯했다.
엄마는매번 아빠를 쉬 용서했으나 자식에게는관대하지 않았다.어두운 밤에 어린자식을 집밖으로 내쫓고, 실수에도 몽둥이를 들고 쫓아오기도 했다.도통 일관성이 없었다.그 기세로 다른 사람을 패야지.
할 말은못 하고 울기만 하는 사람이 밉다. 우는 사람 옆에는 속으로 우는 사람이 있다. 수많은그날들의 음험한 공기, 작은 심장을 쳐대던 태산 같던 불안, 우스운 판사가 되어 사태를 종료시키고자 했던 말도 안 되는 노력들. 유약하고 쉽고 사납고, 고생과 고통을 아무에게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 한 맺힌 못난이 얼굴. 그 옆 뻔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