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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얀 Oct 22. 2023

개나리유치원 옆에는 이상한 여자가 산다



우리 동네에는 개나리유치원이 있었다.

꽤 큰 규모에 예쁜 정원도 있었던 그 유치원 항상 내 마음 어딘가에 있다. 노란색 원복을 입고 동그란 모자를 쓴 아이들을 보면 왠지 가슴이 쿡쿡 쑤셨다. 마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당시 나는 유치원 아닌 OO학원에 다녀야 했다. 1층 상가 문을 드르륵 열면 장난감 미끄럼틀이 있는 작은 아지트 같은 교실이 나왔. 당연히 우리의 옷차림은 록달록 중구난방이었다. 늘 청바지를 입으셨던 학원 선생님은 파마머리를 하고 입을 동그랗게 말고 홍홍 었다. 좋은 분이었다. 그렇다고 개나리유치원 원복을 입은 내 모습을 상상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이 씩씩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그렇게 다정하게 불러주는데도 그랬다.



어릴 때 부모님과 중국 무협드라마를 자주 다. 대여점의 무협시리즈는 열 편에서 스무 편 정도의 분량인데,  이야기가 궁금한 것은 애나 어른이나 같았다. 밤새워 비디오를 연이어보 다음날 거울을 딱 보면 눈에 핏줄이 터져있고는 했다. 비가 내려 발목까지 흙탕물이 휘몰아치는데도 대여점에 비디오테이프를 빌리러 다녀오기도 했다. 재난급의 날씨에 초등학생 막내딸을 보내며 걱정은 되지 않았던 걸까, 딸아이를 험지로 내던지는 내 부모의 비범함을 눈치챘어야 했다.


주인공최고의 힘을 갖기 위해 무공을 연마하고 그 목적을 이루고도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은거를 잘했다. 대사형, 무림지존이 되어도 깊은 산으로 들어가 버리는 거다. 따거되어 돌아온 주윤발 배우는 8천억에 달하는 재산을 기부한단다. 나는 자타공인 나약한 인간. 알고 있지만 노오력을 할 힘은 여전히 나지 않고, 훌륭한 인간 힘껏 노력해 살아보고 얻은 평안을 거저 얻어오고 싶을 뿐이다.




개나리유치원에 다니지 않아도, OO학원에서의 날들은 좋았다. 그 아이들의 깜찍한 원복을 흘깃 보고 내 옷을 내려다보는 일은 골이 , 학원생활은 대체로 즐거웠다. 개나리유치원 안 가도 괜찮았던 것처럼 바라던 대로 안되어도 좋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시시한 어른이 되고 보니, 다 큰 어른은 사는 게 안 기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물음이나 품고 있는 걸.

티브이에 나오는 불한 사람, 상심한 지인, 문제를 안고 있는 인간에게 깊은 유대를 느낀다. 잘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나뿐만은 아니다. 동지 수, 수 될 거다. 얼마나 다행이야. 혼자 아닌데.


아빠가, 가족이, 기쁨을 앗아갔다고 생각했다. 가슴속에 어떤 불씨가 사그라들었다고. 냉장고 앞에서 쓰러져 잠들던 날들이 지나고,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웃고, 아이들이 웃음을 흩뿌리는데도 조마조마했다.

진짜의 나는 소파에 몸을 말고 두 시간이건 세 시간이건 꼼짝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속에 있 듯했다.


애써 긍정적이고 싶지 않지만 이제와 울어보아도 오랑우탄 닮은꼴이 될 게 뻔하다. 웃으면 푸근하고, 울면 오랑우탄. 현실의 선택지는 분하기만 하다. 


개나리유치원 자리에는 높은 빌딩이 들어섰다. 나는 남았다.

잘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함, 안다.

여전히 누구라도 그 정도는 특별 것이기.




사진출처 : 픽사베이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도 있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건 우리의 노력과는 무관한 일이다. 하지만 이해하느냐 못하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우리의 영혼에 어떤 문장이 쓰여지느냐는 것이다.

                                                         김연수 「 소설가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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