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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얀 Dec 27. 2022

삼촌, 밤 좀 치세요!

그냥 치세요




아잇, 또 제사야.


제삿날에는 독서실에 간다. 집에 가기 싫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친척들 보기가 싫고, 아빠가 남들 앞에서 근엄한 척하는 모습 보는 것이 최고로 짜증 나기에 그렇다.


아빠는 장손이라 우리 집은 늘 제사가 많았다. 추석 전후로 특히 제사가 몰렸는데, 제사음식이 아직 남았는데 또 제삿날이 되어서 한동안 탕국 냄새가 집에 배어 있는 듯했다. 어릴 적에는 그런가 보다, 했다. 제삿날에 아빠가 왜 내게 화를 내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참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견디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집에 어른들이 오면 분명 버선발로 나가 인사를 했는데 그 몇 초를 못 참고 ,

땡땡아, 인사 안 하니?


하고 역정을 낸다. 아주 6백만 불의 사나이, 소머즈 나셨, 속으로 생각했다. 자기 혼자 그 짧은 순간을 느린 재생보기처럼 살기라도 하듯이, 늘 어딘가의 군주처럼 목소리 변환을 마치고 짜증을 냈다.  차릴 때, 제사상 치울 때, 일손이 필요한 순간마다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자식들을 찾아댔다. 어느 날은 참다못한 엄마가,


숙모들 이렇게 많고,
다른 집 애들 다 놀고 있는데, 당신 왜 그래!?


하고 들이박기도 했다. 다.




이런 상황이 날 때부터 10년이 넘게 반복되는데 제삿날이 괜찮으면 그건 변태다. 하여, 중학생 즈음에는 제삿날이 되면 친구랑 9시까지 놀고 독서실에 갔다. 가는 길에 도서대여점에 들러 소설책이나 만화책 따위를 집어 들고 하루치 요금을 척, 내고 자리에 앉는다. 집에는 공부하느라 늦고 말해두었다.  번 해봤는데 수가 먹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 방법으로 정착했다. 얼마나 건전하고 안전하냔 말이지.


11시가 넘으면 슬슬 간을 보다가 12시가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다. 모두 돌아가고 시골에서 올라오신 작은할아버지 한 분만 남아계신다. 나는 친척들을 모조리 싫어하는데, 할아버지와 그 식구들은 다 좋아했다.

할아버지는 항상 몸에 꼭 맞는 단정한 양복차림으로 오셨. 말수는 적으셨지만 만원씩 꼭 챙겨주시며 인자하게 웃으셨다. 다음날 새벽 일찍 돌아가셨는데, 이부자리를 말끔히 개어놓으셨다.

내게 어른은 이 분뿐이었다.




어느 제삿날, 한 번은 숙모가 나에게 밤을 치라고 내주셨다. 나는 방에서 노닥거리는 중이었다. 표정이 상당히 안 좋았다. (자기 아들도 놀고 있는데) 보통 생밤 까는 일 할 일 없이 퍼져있는 남자들 고유업무로 봤는데, 내게 밤을 치라니. 이건 화풀이다,라고 느꼈다. 부아가 난 나는 그 숙모의 남편, 드러누운 삼촌의 위치를 매의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빠르고 크게 가시 돋친 목소리로 외쳤다. 


삼촌, 밤 좀 치세욧!


삼촌의 얼빵한 표정과 숙모의 황당 얼굴이란! 

뒤이어 숙모의 요것 봐라, 하는 얼굴까지.



일하기 싫으면 숙모도 하지말지, 우리 집에 오지를 말지, 왜 여자만 일 하느냐고 어우, 죽은 사람 상 차리다 산사람 죽겠다고 우리 아빠 앞에서 깽판을 치지. 그렇게는 못하면서 같은 여자, 자기보다 한참 아래 약한 상대를 딱 골라 심통을 부리느냔 말이지. 남의 집 자식에게 고생까지 세습해야겠냐고. 





하여, 제삿날에는 독서실에 갔다.

꼬장꼬장한 가문의 평화를 위해서도, 갔다.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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