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하던 해, 뿅뿅뿅 씨 종친회에 참석했다. 우리 일가로 말할 것 같으면 대한민국에서 인구수 대비 미미한 점유율을 갖고 있지만, 전통을 잘 지키고 있는 꼬장꼬장한 종갓집으로 유명해 티비 다큐멘터리에도 나온 바 있는 뼈대 있는 가문들이라 하겠다. 에헴.
나는 이곳에 금덩어리, 대입축하 금메달을 받으러 왔다.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종친회 회원들의 딸, 아들들이 모이는 자리다. 그 높은 명성을 익히 들어와 당연히 도망가려고 했는데, 모임 일정이 다가오자 학생 본인이 직접 받으러 오지 않으면 금메달을 안 주겠다고 했다.(예지력 보소) 하여, 대충 차려입고 일대에서 꽤 비싸다는 호텔 뷔페에 앉아있다.
잠시 후,
......
또 가난한 건 나뿐인 거지. 유복한 집 자식들은 이 좋은 날 어디로가버렸단 말인가. 참석자는 단 한 명, 바로 나뿐이었다.짝짝짝, 우렁찬 박수가 울리고 내 목에는 번쩍번쩍한 금메달이 걸렸다. 여기 뷔페인데... 아무리 단체석에 따로 앉았다지만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버린 것 같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굉장한 선수라도 온 줄 알겠어. 황금을 버리고 자유를 택한 다른 집 아이들이 부러워졌다. 대단한 금메달 수여식이 끝나고, 황급히 귀한 메달을 목에서 떼어냈다.
식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나는 웃음을 실실 흘리고 있다. 너무 우습다. 고개를숙이고 실소를 참는다. 귀족 식사에나 나올법한 길쭉한 테이블2개가 우리 모임의 자리였는데, 그걸 또 남자, 여자 따로 앉았다. 남녀 칠 세 부동석, 알지? 우리 일가가 이 정도야. 문제는 남녀 성비가 끔찍이 안 맞다는 거다. 평소 우리 엄마도 이 모임에 나오는 걸 꺼려한다. 다른 집 아줌마들도 아직 노망이 들 연세는 아닌지라 여자들 자리는 그야말로 휑했다.
가만, 아빠를 찾아봤다. 아빠는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식사 중이었다. 뿅뿅뿅 씨 종친회 남자 회원들은 닭장 속 닭들처럼 다닥다닥 붙어 앉아있다. 여자들 자리는 1/5도 안찼다. 다리를 쭉 뻗어 누워서 식사하기도 가능할 것 같았다. 자꾸만 웃음이 터졌다. 해괴한 장면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달팽이 요리와 갖가지 푸딩, 디저트들을 차례로 맛보고 있는데, 회원들이 벌써 주섬주섬 갈 채비를 했다. 돈이 얼마인데, 이것만 먹고 간다고? 포크가 차마 놓아지지 않았다. 남아서 더 먹고 가면 안 될까 하여 엉덩이를 떼지 못하고 아빠 쪽을 봤더니 바로 눈이 똭! 마주친다. 아빠는 못 볼꼴을 본 듯 근엄한 얼굴로 확신의 NO 사인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