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 불 꺼진 방안, 언니는 곯아떨어졌다. 나는 눈을 꿈벅꿈벅하며 졸음과 싸우고 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예상보다 기다림이 길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술주정뱅이와 잔소리꾼의 투닥거림이 수마에 휩쓸릴뻔한 내 귓가를 파고들었다.
아빠다!
어우, 술냄새! 씻고 옷부터 갈아입으라고~
놔봐~ 이것만 놓고 나온다니깐
벌컥, 방문이 열리고 부스럭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아빠가 들어섰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그리고 딱 한마디를 했다.
내 거 줘봐.
포장지를 손으로 한 번 쓸어보고 벗겨내기 시작한다. 상자 안에는 귀여운 태엽인형이 들어있었다. 등에 붙어있는 태엽을 감으니딴 따따딴따딴~ 따단~, 하는 경쾌한음악이 흘러나왔다. 신기해 이리저리 만져본다. 와, 생전 처음, 산타가 우리 집에도 왔구나.
아빠는 주 7일 일을 했다. 연세가 있어 일을 그만하시는 날까지 일요일에 아빠가 집에서 뒹구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부모님은 고단했고, 늘 바빴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그냥 집에서 신던 양말을 머리맡에 놓고 잤다. 그러면아침에 눈을 뜬 엄마가 적당히 수습했었다.
그러나 그 해, 그날은 달랐다. 동네에 꽤 큰 팬시점이 생겼다. 우리 중 누가 말을 흘렸는지 모르겠다. 이제 선물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사는 것 같은데, 여전히 챙겨주지 않았다. 옆구리를 찔러도 될 타이밍이었다. 산타가 그 멋진 팬시점에서 선물을 사 올 것이 틀림없었다. 모두 기대를 했고, 잠들었는데, 나만은 깨어 있었다.드디어선물을 받는다는 사실에 감격했었다.
인형은 예뻤다. 흡족했다. 태엽을 감아 음악이 흐르면책꽂이에 올려두고 흥얼대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고가 났다. 인형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이럴 수가,누가 내 인형을 밀었는가.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몸은 부서져 너덜너덜해졌고, 무엇보다 소리에 문제가 생겼다. 엿가락처럼 늘어진 소리를 냈다.그리고 놀랍게도,태엽을감아주지 않아도연주를 하기 시작했다.(천재 인형으로 거듭남)외마디내뱉곤 했다.그 처연한 자가발전 연주는 나를 환장하게 했다.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다 인형의 구슬픈 음악 소리가 귀에 꽂히면(오 마이 갓) 솜털이 쭈뼛 서는 듯했다.밤중에 잠이 깨 눈을 뜨면 인형이 있는 자리로 시선이 갈까 봐 웃기는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인형은 점점 괴기스러워졌다.공포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무서워함부로 버릴 수도, 치워버릴 수도 없었다. 안 보이는 곳에 넣어뒀다가 원망을 사면 어떡할 거야.
더는 가지고 놀지도 않으면서,
너를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야, 너는 쉬어야 해.
하며 덜덜 떨고 옆을 지나다녔다. 물론 나의 두려움은 모두에게 비밀로 했다. 다른 사람이 알면 인형도 알 것이니 치밀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