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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얀 Dec 21. 2022

나는 지금 몹시 돈을 쓰고 싶습니다

사기를 당해도 당해도



아빠는 명수다. 사기당하는 데 명수.

엄마는 아빠와 장 보러 가는 걸 무척 싫어했다. 쓸데없이 아는 척을 많이 하는 데다가 고집이 세서 상대해주기가 무척 성가시기 때문이다. 반면 아빠는 엄마와 시장가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본인이 가야 은 물건을 잘 골라온다고 생각하셨다. 물론 그것은 착각이다.


부모님은 매년 포도주를 담그셨. 일단 포도를 구입하러 가서부터 싸우기 시작한다. 과일가게 앞에서 머루포도캠벨 포도냐를 가지고 다투는 것을 시작으로, (집에서 결정해 올 수는 없었나) 엄마가 구입할라치면 아빠가 탐탁지 않아 하는 것이 패턴이다. 그럴 때 아빠가 잘하는 말은,

돈 더 줄 테니 좋은 거 주시오.


좋은 포도도 이미 다 진열돼 있는데, 더 좋은 포도를 내놓으라니 얼마나 곤란한 말인가. 과일가게 아저씨는 안으로 들어가 포도상자를 가져온다. 똑같은 거다. 그런데 아빠는 그걸 돈을 더 주고 산다. 러면 엄마는 아빠를 세상 제일 얼간이를 보듯 노려보다가 집에 와서 대판 싸운다.




즐거운 외식 날, 메뉴가 정해졌다. 에잇, 회다. (불호)

엄마는 잘하는 데가 있다고 앞장을 선다. 따라간다. 자연산 도다리회를 주문한다. 한 입 먹은 아빠는 인상을 쓰며 말한다.

이거 자연산 아니네.

엄마의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하다. 저 인간 밥맛 떨어지게 또 시작이네, 하는 표정.

다음번에는 아빠가 가자는 데로 간다. 아빠는 가게에 들어서며 주방을 보고 묻는다.

여기 자연산 도다리 있습니까?
진짜 자연산으로 주세요. 돈은 더 드릴 테니까.

그냥 자연산 도다리를 주문하면 되는데, 꼭 '돈을 더 내겠다.'라고 하는 이유는 뭘까. 횟집 아저씨는 채를 들고 한 마리를 무심히 건져온다. 자연산과 진짜 자연산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 아무것이나 훅, 건져내 고수다운 저 무심함  어디에 그런 능력이 숨었지?


돈을 더 내겠다, 는 말은

 ' 나는 지금 몹시 돈을 쓰고 싶습니다. 어서 가져가세요.'

라는 말인 모양이다. 

아빠의 좋은 물건, 자연산 집착은 자연산 송이 사건(쓰레기 송이가 20만 원에 배달 온 사건)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때만큼은 아빠도 본인이 당했다는 걸 알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의 무서운 잔소리를 대꾸 한번 하지 않고 묵묵히 들으셨으니. 그러나 절대로 반품하지는 않는다. 아빠는 한 번 구입한 것을 반품하거나 환불을 요구하는 것은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여기는 사람이다.(자식들이 전부 인간이 아님)




가끔 생각한다. 아빠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결국 아셨을까, 모르셨을까. 사기를 당한 것이 속상할지, 속고도 안 속은 척, 모르는 척하는 자신이 더 괴로울지.

아빠는 왜 주변 사람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도록 그토록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인가.  인류애의 끝은 어디야!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아닌 것이 그렇게 견디기 어려운 일이냐고.


엄마는 아빠와 대차게 싸우면서도 가끔 말씀하셨다.

우리가 이해해야 해. 아빠는 참 불쌍한 사람이야.
할머니 옆에서 외롭게 컸잖아.
아빠는 어린이야, 애정결핍.  

 

아빠아빠로 사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 슬쩍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 왜 없었겠어. 그는 혼자 시를 쓰는 것이 취미였을 정도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었잖아. 어리석은 짓을 했, 후에 알 수도 있었겠지.



훈훈한 생각은 곧 이와 같은 의문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잘 알면서, 엄마는 왜 매번 아빠와 파이팅 넘치게 싸우는 거야? 결혼할 때 외할머니가 심하게 반대했다던데!(1000% 본인의 선택) 역시, 말과 실천에는 백만 걸음 정도의 거리가 있는 거겠지. 다 이해하지 못해도 백만보가 구십구만구천구백보가 되도록 걸어가 보는 것이 우리의 몫이겠지.

어쨌든 우리는 가족이니까.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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