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가 먹고 싶으면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아빠는 고루한 사람이다. 여자는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도 먹고 싶다는 건 잘 사다 주었다. 문제는 아빠가 너무 많은 양을 사 온다는데 있었다. 맥땡 땡의 치즈버거 20개, 항상 아빠는 스무 개를 사 왔다. 나 말고는 햄버거 좋아하는 사람도 없는데, 양이 너무 많으니 강제 배식이 이루어졌다. 언니, 오빠 모여 앉아 야무지게 먹어도 열다섯 개쯤 남곤 했다. 다음날 친구를 데려와 전자레인지에 데워 같이 씹어 먹기도 여러 번. 아니, 분명 아빠 눈에도 햄버거가 남는 게 보일 텐데, 왜 이러는 건가.
" 아빠, 20개는 도저히 다 못 먹는다고요. 매번 남아."
그러면 아빠는,
" 너희 많이 먹으라고 샀다."
그러고는 슬쩍 일어나 가버리곤 했다.
내가 태어날 때 아빠는 쫄딱 망했다.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 장부를 다 모아놓고 눈물을 삼키며 9개월을 공부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아빠는 보란 듯 재기에 성공했고, 우리 집은 동네에서 좀 잘 사는 집이 됐다. 비디오를 처음으로 산 날, 부시맨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와 온 가족이 배가 찢어지도록 웃은 기억이 난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큰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파트 입주 첫날, 집에 들어서며 길을 잃겠다 농을 쳤다.
못 먹고살던 시절이 가슴 아파 매번 스무 개를 사 오는 걸까. 혹은 질리도록 먹고 다시는 심부름시키지 말라는 깊은 뜻이 숨었나. 궁금증은 어느 날 풀렸다. 아빠, 엄마의 대화를 엿듣게 된 어느 날 오후.
" 당신 말 좀 해보라니까. 햄버거를 왜 자꾸 저렇게 많이 사?"
"......"
" 애들 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뒀다가 먹으면 맛도 없다고!"
" 그럼 부끄럽게 어떻게 가서 하나만 달라고 해? 스무 개는 장사해줘야지!"
헉. 상상도 못 했다. 아빠는 하나만 사는 것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항시 본인만 보고 있는 듯 사시는 분인데, 주문할 때도 눈치를 보았던 거였어. 돈이 없어서 하나만 산다, 이렇게 생각할까 봐 더 싫었던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