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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얀 Oct 22. 2023

추억에는 냄새가 난다




흰밥을 한 술 떠 입안으로 밀어 넣는 순간, 아빠는 살아난다. 아무렇지도 않은 어느 시간에 내 옆에 와 앉는다. 그러면 나는 밥알을 오물오물, 새색시처럼 얌전히 씹어 삼키는 모습을 쳐다본다. 어쩜 입도 안 벌리고 소리도 안 내고 저렇게, 이 없는 영감이 침을 내어 아끼는 음식을 살살 녹여먹듯 밥을 먹나. 숟가락에 밥을 봉긋 떠 반찬을 위에 척 얹고 입으로 가져가는 그 행위의 반복이 언제든 되살아난다. 한 숟갈마다 그만의 맛이 있는 듯 쌀밥 한 공기를 찬찬히 음미했었다.


파란 눈의 외국인, 현각스님의 책에서 본 불교의 가르침에 그런 것이 있었다.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을 뿐, 설거지를 할 때는 설거지할 뿐. 반면 나는 온전한 그 순간을 살지 못하고 늘 딴생각을 하고, 그런 자신을 곧잘 알아차렸다. 밥만 뜨면 될 것을 하릴없이 그립지도 않은 아빠를 떠올리고 마는 것이다. 쌀밥을 지을 때는 스멀스멀한 옛 생각을 누르는 것이 먼저, 쌀통을 여는 것은 두 번째가 된다.




등산 즐기한결같은 남자. 새벽에 산을 타는 것은 의 미라클 모닝 시작이다. 웬만해선 아빠를 막을 수 없었다. 늘씬했으며 종아리며 허벅지에 돌덩이를 박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매일  뒷산의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사람의 당당한 아웃풋이랄까.


반면 나머지 가족들은 부지런한 1인이 돌아오는 시간까지 자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특히 엄마는 늘 체력이 달려 저녁이면 할머니 같이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잠이 모자라 자식들과 같은 시간대에 겨우 눈을 떴고, 3남매의 도시락 6개를 순식간에 싸내곤 했다. 어떤 단백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계란말이조차 해주는 일 없이 꾹꾹 눌러 담은 밥에 김치류만으로 반찬통을 채웠다. 따로 도시락 반찬을 만드는 일이 거의 없었고, 집에 있는 다양한 김치를 가득 넣어 주었다. 김장한 날에는 김치만 두통도 싸주는 만행을 저질렀다.


지금은 웃음이 . 그러니 용서하겠다. 하지만 엄청난 비주얼과 강렬한 냄새, 압도적인 양이 여간 당혹스러운 게 아니었단 걸 잊지 못하다. 햄을 차곡차곡 몇 개만 싸 오는 친구가 부러웠다. 도시락에 여백이 있는 아이는 있어 보였다.


우리는 고루 똥배와 물렁살을 지니고 있었다. 이즈음에 찍은 가족사진을 보면 보살같이 인자한 미소와 당당한 풍채를 자랑하는 가족들이 보인다. 엄마는 고풍스러운 액자에 든 이 가족사진을 아직도 거실에 걸어두고 있다. 과거세탁을 해줘도 모자랄 친정엄마가 만방에 자식들의 흑역사를 퍼뜨다. 남편은 친정에 갈 때마다 이 사진 앞에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어린이같이 환한 웃음을 터뜨린다. 우리는 한 마음으로 이걸 떼고 싶어 하지만 잘 나오지도 않은 사진을 걸어두는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늘 그냥 둔다. 이것은 우리 집의 유일한 가족사진이기 때문이다.




티브이 취향은 또 어떻고. 드라마를 볼 때면 늘 사극을 택했다. 관심법, 을 외치던 궁예를 마지막으로 아빠와는 도저히 티브이를 공유할 수 없음을 알았다. 현대극은 보지 않고 사극 외길을 걸으시더니, 원래 본인 성향과 맞물려 극악한 고루함 탑재되었. 


여자는 이래야 되고, 암탉이 뭐가 어쩌고.
어른이 말하면 죽지는 못해도 죽는시늉은 해야 한다.


부모 없이 자란 형편에 제대로 된 시부모를 데려놓지도 못했으면서 엄마에게 무리한 요구를 많이 한 것으로 안다. 때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들어줬는데, 커가면서 그 고매한 입에서 고리타분한 소리가 나오려고 하면 속이 부글부글거렸다. 유교가 뭔지 잘 몰라도 그는 어쨌든 유교를 신봉했다. 스스로 선비쯤 생각하였을 수도 있다. 종친회에 열심히 나가고, 우리 집안이 얼마나 고고한 정신을 지니었는지 설명할 때 아빠의 목소리는 고양되었다.


그래서, 우리 조상중에 이름을 떨친 분은 누군데?
한 명만 말해봐.


침묵.

아, 없나 보군.




지난 일은 흐릿해진다. 요망할 뿐이야. 곱씹다 보니 타래죽처럼 묽어졌다 하여도.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귓가에 흐르면, 소파 끝에 앉아 헤드뱅잉을 했다.

가족들이 있거나 말거나 그랬다. 이유는 모른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엄숙한 집안에서, 부담스러운 볼거리를 강제보급하는 기괴한 아이는 나뿐이었다. 아빠나 엄마의 따분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상관도 없었다. 곡이 끝나면 이어폰을 뽑아 들고 유유히 방으로 들어갔다. 그뿐이었다. 그러고 나면 다시 고요했다.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서 닮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갔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우리는 영원히 모를 거야. 당연하지. 세상에는 나눌 수 없는 게 얼마나 많은데.

                                    안홍기 「영화 저편, 길을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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