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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얀 Feb 01. 2023

모든 아빠에게도 이야기가 있다

저마다의 사소한 것들




까마득한 어느 날, 라디오를 듣는데 방송인 김제동 씨 그런 말을 했다. 영화 「라이온 킹」에서 잊지 못하는 세 마디가 있노라고. 그것은 아기사자 심바가 아빠인 무사파를 잃는 장면의 대사.


Help!
Somebody.. Anybody.. Nobody!



볼 때마다 운다. 애통하다. 

양친 다 있는 나도 슬퍼 우는데,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김제동 씨에게는 더 사무쳤겠지. 그가 태어나고 100일이 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로 안다. 누군가에게는 영화의 슬픈 장면 되고, 제동 씨에게는 남겨진 어린 심바의 형언할 수 없는 막막함  일처럼 묵직하게 닿았을 것이다.


아무도 없나요!



아빠는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였다.

부모 이혼 후 증조할머니께서 키워주었다. 일생 눈치를 심하게 보고 주변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자라서는 아빠의 어린 시절이 어떠했한참 상상해보기했다. 증조할머니가 어린 손자에게 다정했는지, 그런 것을 따질 수는 없다. 있기는 하되 없기도 한, 존재가 아리송한 부모도 있는데 먹이고 입히고 재워준 분을 판단하지는 않는다.부모 대불평하지 않았지만 그리워하는 것 역시 보지 못했다. 돌아가시고 증조할머니 옆에 자리 잡으신 것을 보며 마음의 추를 가늠해 볼 뿐이다.




아빠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걸로 알았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 번씩 부모의 학력을 적어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럴 때면 고졸, 이라고 적어왔던 것이다. 굳이  드러나도 되었을 진실이 드러난 것은 내가 정보기관(?)의 면접을 볼 때였다. 적어내야 할 것들이 사생활 침해 수준으로 세부적이고 많았는데, 거짓 사항 표기에 대한 경고가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소심했다. 그때 알았다. 아빠는 고졸이 아니었구나. 커밍아웃보람도 없게 나는 면접에서 똑, 떨어졌다.

1999년 옷로비 청문회가 끝난 뒤, 밝혀진 것은 앙드레김의 본명뿐이라는(본명 : 김봉남) 웃지 못할 일화 있었는데 나의 면접은 아빠의 학력포장의 자백과 함께 끝났다. 


못 배웠어도, 영민했 것이다.

창밖에서 훔쳐 들으며 공부하고, 혼자 시도 썼다. 단풍나무 손을 뻗어 예쁜 잎을 고르는 아빠의 모습 상상 수 없지, 그는 그렇게 여러 잎도 가져와 자시 옆에 붙여두었다. 피터 드러커를 선망해서 그의 책들을 읽고 글을 쓰고, 청년처럼 눈이 초롱초롱해 두꺼운 책을 읽어내고 공부했다. 평생교육원에서 공부할 때는 대표로 상장도 받고 우수한 성적으로 과정을 마쳤다. 이 뜨거운 만학도를 우리 식구만 안다.


당시 고등학교 수업료가 얼마나 대단한모른다.

공부도 곧잘 하는데 나라면 좀 미안해서라도 돈을 마련해 주었을 텐데, 했다. 머리카락을 박박 밀고 피를 좀 많이 팔아서라도 한 번쯤은! 하는 과격한 생각을  적이 있다. 낳아주었을 뿐 키워주지 않았다. 나는 조부모에게 이름 한 번 불린 기억이 없어, 좋고 싫고를 따질 감정이란 걸 가지고 있지 않다. 모르는 사람 마찬가지인데 당연히 망도 하지 않는다.


공부만이라도 시켜주었더라면, 것만 아쉬워했다.




불우한 환경을 뚫고 온 아빠와 귀로 듣고 자란 사람은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나는 고등학교 체력장 날, 오래 달리기도 기권한 인간이다. 그날, 운동장 한 바퀴를 겨우 돈 후 손을 들고 옆으로 쓱 빠져 바라본 하늘은 청명했다. 두 바퀴째에는 더 많은 기권자 동지들이 있었다. 나는 이럴 것을 다 알고 첫 바퀴에 재빨리 포기했다. 우리는 스탠드에 앉아 완주하는 아이들을 구경하며 재잘거렸다.


짝은 완주를 했는데, 나중에 입에서 피맛이 난다고 하는 거다. 쟤는 그 괴로움을 견디고 뛴 건가 싶어 순수하게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만 뛰고 올려본 하늘도 맑았는데 말이다.


출처 : 픽사베이


어렸을 때 무척 가난했던 것은 기억도 안 난다.

고난은 내 부모의 것이었지 내 것은 아니어서 아빠와 나, 우리는 설정값이 달랐다.

그리고 어쨌거나 내 태평한 설정값은 아빠가 전심으로 것이.



각자 애인과 도망치면서 쌍둥이의 부모는
'단 한 번뿐인 인생을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들은 사랑을 위해서 가정을 버렸다. 그러나 이렇게 열세 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버린 나는 절절이 생각해 본다. 인생이란 결코 드라마틱한 연애나 격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인생은, 기한이 지나지 않은 건강보험증이나 주택융자금 상환이 이달에 무사히 지불되었다는 은행의 통지서 같은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미야베 미유키  「스텝 파더 스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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