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논과 앨범장수

by 얀얀




아빠는 버스에서 앨범을 팔았다.

가진 것 없고, 배우지 못하고, 부모조차 없 청년의 첫 직업이었다.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분들을 보면 아빠 생각이 다.

대학생 때 매일 두 시간씩 지하철을 타야 했는데,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무표정한 얼굴을 한 아저씨가 큰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아저씨는 시선을 아무 데도 두지 않고 로봇 같은 목소리로 물건을 팔았다. 나는 힐끔거리다 보통은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다.

역 내에서 불법으로 물건을 판매하는...


그런 안내방송은 눈치도 없이 자주 나왔.


버스에서 무려 앨범을 팔 수밖에 없는 사정과 그것을 사 주었을 승객의 마음을 나는 알지 못한다.

보통 가만있었으니까.




우리 집에는 슈퍼맨이 있었다.

앨범장수에서 사장님으로 승격한 바로 그다.

아빠는 쉬지 않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 사업이 쫄딱 망했으니 몇 년은 재기하느라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기억 속에 아빠가 주말에 집에 있는 그림은 없다. 결혼식, 각종 모임에 가는 일이 있어도 볼일이 끝나면 반드시 일터로 돌아갔다.


주 6일 근무가 보편적인 시절이었다. 아빠는 직장인이 아 사장님인데 자발적으로 일요일까지 일한다는 점에서 우리 압도다.

놀러 가자, 그런 말을 감히 누구도 하지 않았다.


○○야, 나 영구와 땡칠이 보러 간다~

친구 어린이 회관에 영구와 땡칠이를 보러 간단다. 우리 집에도 영구와 땡칠이를 보러 갈 돈이 있다. 살림살이는 빠르게 나아져서, 아빠가 저녁마다 들고 오는 007 가방에 돈이 수북했다. 티브이가 아닌 커다란 화면에 영화가 나온다는데, 그 재밌는 걸 알 길이 없 다.


한참 후에, 가족과 간 것은 아니지만 영구 시리즈를 볼 수 있었다. " 영구 없다~" 하고, 스크린 속 바보 심형래는 자꾸만 숨다.

여러분, 우리 다 같이 영구를 불러볼까요?


대충 이런 말이 들렸던 것 같다.


영구야~~~


나는 얼굴이 터질 듯한 기세로 영구를 렀다.

이야, 문화생활은 이토록 즐거운 것이었구나!




아빠 현철이 아니라 비틀스의 광팬이 좋았을 텐데.

존 레논 아이 잘 키우겠다고 5년간 활동을 안 했다.


반년에 한번쯤, 우리 가족도 어딘가 밝은 곳으로 함께 갔으면 좋았을 거다. 김밥 말아 사이다도 챙기고 돗자리 펴고 앉아 시간을 축내었어야했다. 나는 스스로 잘 나다니는 아이였으나 어린아이가 홀로 갈 수 있는 곳이야 뻔하다. 친구가 가족들과 놀러 간다고 하면 속으로 흠칫해 그 아이를 연예인 보듯 신기해했다. 어떻게 사람이 놀러를 다 가지, 같이 놀러도 가는 화목한 가정은 티브이에만 있는 건데 말이.


어른의 인생은 살아내야 할 고통 같아 보였다. 재미없는 마라톤.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만 하는 아빠는 누가 봐도 성실한 사람이다.

우리는 좋은 동네의 대형 아파트 이사 갔다.

월화수목금 금금을 산 남자를 인정해야 했다.



출처 : 픽사베이



저는 역경과 슬픔과 실망이 정신력을 더 강하게 해 준다는 이론에는 찬성하지 않아요. 행복한 사람들이야말로 친절을 꽃피우는 이들이지요. 저는 염세주의(참 멋진 단어죠?방금 배웠어요!)를 믿지 않는답니다.

진 웹스터 「키다리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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