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얀얀 Jan 11. 2023

도망가는 남자




수술실 안, 마취를 해서 아프지는 않지만 아래에 열기가 느껴진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숨이 안 쉬어졌다. 을 것 같아요, 라고 입을 떼려는데 바로 산소호흡기가 씌워졌다. 아, 살 것 다. 아기가 나왔다.

회복실로 옮겼다. 아기는 괜찮지요, 묻고는 숨을 천천히 내쉰다. 엄마가 왔다. 눈이 텅 빈 사람 같아 보였다. 

아빠가 도망갔다.


출산 후 가족에게서 들은 첫 말이었다.

딸이 아기를 낳는 틈을 타 아빠가 빤스런, 했다는 것.

지금 네 아빠 찾으러 가야겠어. 그게 낫겠지?


가시라, 했다.

하반신 마취 상태였기에 보호자가 없어 입원실로 옮겨지지 못했다. 죄송하지만 간병인을 알아봐 달라 간호사 선생님부탁을 했다. 얼마 후 아기는 건강하다며 묻지 않은 말 건네시고는 하루 이틀 하겠다는 간병인이 당장 노라 이곳에 그냥 있어도 된다고 손을 살짝 잡아주신다. 차례로 다른 산모들이 회복실에 들어오고 각자의 방으로 떠나갔다. 

일하는 분들께 폐가 고 있지만 '우리 아빠가 내가 애 낳는 사이에 도망가서 엄마가 그 뒤를 쫓는 중이야. 그러니 내 옆에 좀 있어주지 않겠니?'그런 해괴한 말, 아무개에게도 할 수 없었다.




출산을 칠 앞두고 엄마의 전화가 걸려왔었다. 흥분해 몹시 떨고 있었다. 경찰서에서 아빠를 마주하고 말했다. 

인정하세요.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어요. 잘못을 인정만 하세요.


인정할 줄 알았다. 엄마는 아빠가 시인하면 넘어가겠다고, 부르르 떨면서도 그 말 계속했다. 만삭의 딸이 하루종일 끼니를 거르고 경찰서에 있었다. 임산부인 딸의 건강을 염려해서라도, 아빠가 내 말을 따라줄 줄 알았다. 우리는 어쩌면 넘어갈 준비를 하고 아빠가 그 말을 뱉어주기만 바랬는지도 른다. 그날, 아빠는 작은 사안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 리고 엄마가 나를 수술실에 들여보내는 그 짧은 간에 달아나버린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아빠는 그날 도망 점심으로 한우를 먹었다. 같이 먹은 사람이 한 명 있었고, 카드 내역을 보니 고급한우식당에 들른 듯했다. 2000원짜리 식당밥에 생판 모를 남이 남긴 찌개도 잡던 아빠가 비싼 한우도 잘 드신다는  공개되었다. 하필 그날에, 아빠가 인생을 누리 살고 있다는 기쁜 일을 자세히 알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아빠를 잘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식을 위해 목숨 내놓을 수 있는 분이라 여겼. 원하는 사랑을 주지 않아도 그런 믿음이 있었다. 아빠의 잘못, 엄마의 충격보다 내가 버림받았다는 사실 강렬하게 다가왔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그 앨범의 첫 번째 타이틀은 <스타팅 오버>. 5년 동안 나는 존 레논이 음악활동을 재개하기를 간절히 염원해 왔다. 그리고 기다렸다. 왜냐하면 우리를 그토록 기다리게 하며 휴식에 들어간 이유에 대해 존 레논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라고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존 레논이 부러웠다.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여준 아버지의 존재방식에 동경을 품었기 때문이다.

                                             릴리 프랭키 「도쿄타워 





이전 01화 초코바닐라 아이스크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