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여행 마무리 단상
튀르키예에서 교환 생활을 하던 참, 어학당이 일주일 넘게 쉰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4월 중순에 모로코를 가기로 결심했다. 함께 교환학생을 하던 친구들은 모두 유럽으로 떠났다. 언어가 아예 통하지 않는 나라로 혼자 떠나본 적이 없었기에 가는 것이 과연 괜찮을까 오랫동안 고민했다.
튀르키예에선 매주 혼자 여행을 잘도 다녔다. 그런데 혼자라는 생각이 단 한 번도 든 적이 없다. 늘 내 곁에는 도와주려는 다정한 현지인들이 있었으며, 숙소에선 오고 가는 다양한 여행객을 마주하며 꽉꽉 채워지는 하루를 보내곤 했다. 음, 내가 왜 혼자야? 혼자면 어때!라는 생각으로 모로코행 비행기 티켓을 단숨에 결제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모로코에서 홀로 여행하던 자들은 국적불문 대체로 나와 잘 맞았다. 누구는 지저분하고 시끄럽다고 표현하는 시내 거리를 그들은 역동적이라며 재밌어했고, 나는 부정적인 시야를 깔끔하게 지워내고 자신만의 길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어가는 그들의 삶에 푹 빠졌다. 이 나라에선 아무 일조차 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웃픈 해프닝들이 일어났다. 일상이 아닌 여행이니까 가능했던 것 같은데, 우리는 이를 모조리 낭만으로 취급해 버렸다. 그리고 나선 항상 입모아 농담 삼아 말하곤 했다. ‘모로코가 유튜브각스러운 나라인 건 맞다!’
사막 투어를 함께했던 H가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갈 때 즈음 말을 꺼냈다. 유럽에서 마주했던 한국인들은 모두 관광객 같아 보였는데 여기는 한 명 한 명이 정말 독특하고 존재감이 넘쳐 신기한 경험을 하고 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유유자적해 지루할 뻔했던 여행의 판도를 모로코가 다 뒤집고 간다고, 덕분에 행복했다고. 역시 독특한 여행지를 찾아온 사람들과의 인연은 끈끈해질 수밖에 없는 거구나 싶었다. (아직도 모로코에서 만났던 한국인 여행자들과 자주 연락을 하고, 한국에서도 몇 명은 보기로 했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여행객은 퇴사하고 이직을 준비하는 회사원들이었는데 그중 한 분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다연 씨는 작은 것 하나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들여다보는 것 같아요. 자주 듣던 말이었다. 그러나 예전이었으면 어떤 의도로 말한 건지 의심부터 하고 시작했을 것 같다. 제가 그래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요... 라며. 그런데 이제는 무엇에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자가 어디에든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법이라는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모로코 여행은 내가 학과에서 받았던 에세이 대상 수상금으로 온 만큼 간절한 여행이었고, 그 여행의 자잘한 기록이 어떨 땐 다음 메인 포털에 실려 6만 명에게 읽혔던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내 신념은 더욱 확고해졌다. 나만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담아내고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툭, 건드려볼 수 있다면 충만하겠구나.
모든 순간이 이렇게 낭만적이게 벅차고 좋았나? 그건 아니었다. 숙소 샤워기를 틀면 비린내와 함께 노란 물이 나왔고 덕분에 피부 트러블이 여태 하나도 나지 않았던 내가 지금까지도 이마에 좁쌀 여드름을 가득 갖고 있다. (샤워 필터기를 꼭 가져가세요.) 사막에서 밥을 먹으려고 하면 수십 마리의 파리가 붙었고, 우리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들을 단백질이라고 생각하자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현지인의 말을 왜 믿지 않고 메디나 길을 반대로 가냐며 뒤통수에 소리를 치는 사람도 있었으며, (무시가 답입니다.) 반강제로 비싸게 사야 했던 아르간 오일과 선인장 크림은 집에 돌아오니 다른 크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꼭 그 자리에서 제품을 확인하세요. 꽁꽁 묶어두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에선 나를 '동양인 여자'라는 이유로 '특별'한 게 아니라 그저 '다르고 낯선' 존재로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웃으면서 다가오는데 분명히 기분이 나빴다. 튀르키예에선 어떨 때마다 현지인의 관심이 가끔 날 굉장히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는데 이 일을 겪고 다니 내가 조금 우매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관심법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읽지는 못하겠지만, 모로코 여행 이후부터 아닌 것엔 맺고 끊음을 더욱 확실히 하게 됐다.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세요!)
만약 나와 비슷한 또래 여자애가 홀로 모로코를 일주일 이상 여행한다면, 섣부르게 추천해 줄 수는 없겠다. 그러나 결심했다면 곁에서 내내 응원해주고 싶을 것 같다. 위생에 예민하고 이슬람 문화권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곳곳의 위생은 어쩔 수 없는 영역인 것 같다. 나는 이미 마음을 내려놓은 지 오래였기 때문에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불편한 점은 분명히 있었다. 어떤 여행자들은 이슬람권 국가에서 하루에 5번 울려 퍼지는 아잔 소리를 심히 낯설어했고, 무지성으로 울려 퍼지는 니하오와 곤니찌와에 유럽에서 건너온 한국인들은 불편해했다. 단순히 셀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귓가에서 쉴 틈 없이 들리기 때문에 나도 어떨 땐 니하오라고 말하며 합장한 뒤 지나갔다. (보통은 무시하는 것이 답. 그래도 터키인들은 나 한국인인 거 알아보던데.)
이 여행은 순한 맛은 아니었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태도, 돌발 상황이 찾아오더라도 그걸 잘 받아들이고 맞서는 용기만 갖고 있어도 혼자 여행은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또 사람들 덕분에 정말 많이 행복했다. 마라케시의 제마 엘프나 광장에서 나는 독특한 한국인 여행자들과 현지인들의 현란한 교류를 보며 거의 쓰러질 정도로 웃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런 여행을 그토록 바라왔던 것 같다고. 혼자 왔지만 둘러보면 전혀 혼자가 아니고, 앞으로의 남은 여행지들은 얼마나 더 재밌을까 기대를 잔뜩 품게 되는 그런 여행. 사막에선 잘 달궈진 모래에 푹 푹 발을 담가가며 생각했다. 갈망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늘 도장 깨기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게 내 삶인 것 같다고. 계속 부딪쳐가며 울퉁불퉁했던 나를 다듬고 다듬어 빛을 내는 삶을 살고 싶다. 그 과정 속에서 분명 또 많이 실패하고 슬퍼하고 가끔은 또 어린아이처럼 미련 가득 속상해할 테지만, 잘 해낼 것이라는 그 확신이 있으니까. 특파원을 넘어서 세부적인 갈래로 펼쳐진 내 꿈을 꽈악 붙들고 살아가고 싶다.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나만의 고집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