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서 따뜻한 기운이 올라와 온몸으로 번져간다. 나는 더 고요해졌고, 편안해졌다. 신에 품에 안긴 듯 걱정도 고민도 없이 5일을 지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나는 성 베네딕도회 공동체 안에 머물면서 수많은 찬양기도와 미사를 드렸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신부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이들의 시간을 공유할 수 있었다. 철저하게 짜인 하루 일과를 그대로 따라 움직이며, 신 안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맞보았다.
이곳 공동체는 6세기 성 베네딕도가 만들어 놓은 규율을 그대로 따르며, 산티아고 길의 순례자들과 만남을 갖고 교류를 하며 지낸다. 수도 규칙에 따라 신 안에서 자신의 수도 생활에 중점을 두고, 평일엔 3번의 기도와 (기도는 주로 시편의 구절을 그레고리오 성가로 부른다) 아침 미사를. 마지막으로 저녁 9:30에는 순례자의 순례길을 축복하는 예배를 드린다. 일요일과 휴일엔 2번의 기도와 정오에 드리는 미사, 오후 9:30에는 마찬가지로 순례자 예배로 마무리한다.
오늘도 식사는 침묵과 함께 한다. 원장 신부님의 선곡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차이콥스키다. 웅장한 듯 가녀린 그의 곡은 이 수도원의 아름다운 정원과 어울린다. 3평 남짓 아담한 정원엔 다양한 식물이 옹기종기 서로 잘 어울려 지내고 있다. 마치 수도원의 다국적 신부님들이 한 공동체에 머무는 것처럼 혹은 산티아고 길 위의 다양한 순례자들처럼 말이다.
식사는 신부님들이 준비한다.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휴식을 하다가 식사 시간이 되어 모두가 모이는 다이닝룸으로 가면 식탁 위에 모든 게 준비되어 있다. 난 그냥 포크와 나이프만 들면 된다. 다양한 음식들이 요리되어 눈앞에 펼쳐지는데, 진심 정말 정말 맛있다. 또한 식사 때마다 달라지는 와인의 색에 세심한 수도자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늘 맛보던 평범한 길 위의 순례자 메뉴와는 다른 따뜻함에, 지쳐있던 한국 순례자는 토실토실, 방긋방긋이다.
만들어진 음식에는 거만하거나 치장되지 않은 겸손함이 존재하며, 먹는 내내 만족감을 준다. 게다가 엄숙한 침묵과 함께 하는 식사는 처음엔 부담스러움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창 밖의 하늘을 보며 한입, 정원에서 춤추듯 흔들거리는 갈대를 보며 한입, 차이콥스키를 떠올리며 한입, 마주 앉아 있는 신부님의 발을 보며 한입. 그러다가 멍하니 식탁 위 바구니에 담긴 빵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와인 한 모금.
기도하고 일하라 (Ora et labora)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에 따라 신부님들은 맛있게 즐겼던 식사 후의 뒷정리까지 하신다. 나는 감사히 먹고, 미소로 화답하면 만점의 점수가 주어진다. 몇몇 신부님들이 정리를 하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오면 원장 신부님은 오늘 저녁과 내일의 미사에 기도해야 할 제목들을 일러준다. 마지막으로 식사를 마치는 기도를 그레고리오 성가로 짧게 부르면 근엄했던 식사 시간은 끝이 난다.
그리고 정원의 의자에 다 같이 모여 앉으면 반전이 일어난다. 그 침묵의 고요함은 어디로 갔나요? 유쾌한 웃음과 대화의 장에 첫날엔 어리둥절이었다. 주로 안토니오 원장 신부님이 대화를 이끄시는데 어찌나 유쾌하게 표현을 잘하시는지 모두를 즐겁게 만들어주신다.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지 않을 때, 이곳 수도원이 생각났다. 자연스럽게 되돌아오게 되었고, 풍족한 시간을 보냈다. 작은 마을 라바날 델 까미노는 적당한 고도 덕분에 늘 쾌적한 온도와 바람으로 최적의 휴식을 선사해 주었다. 신의 품에서 수도승들처럼 타자 구원의 온화함과 포근함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느낄 수도 있었다.
12세기에 지어진 동굴 같은 성모승천 성당에 앉아 느꼈던 안전함과 평화는 앞으로 걷는 내내 떠올릴 것만 같다. 매일밤 폭신한 잠을 선사해 주었던 침대(25년 된 매트리스는 2달 전 새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하하)와 아늑한 방, 하루에도 여러 번 듣고 부르던 그레고리오 성가를 뒤로하고 차분한 이 에너지를 끌어올려 다시 길을 떠난다. 꺼죽했던 순례자는 몸도 가슴도 영혼도 다시 풀충전하여 반짝반짝 빛 나는 얼굴로 콤포스텔라까지 남은 약 240여 Km를 당당하게 걸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