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살아진다.

by ean

눈을 뜨고 싶지 않다.

아니, 어쩌면 눈이 제 기능을 다한 듯도 하다.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다.

허우적댄다.

발버둥친다.

아! 아직은 살고 싶구나. 아니,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순간 차가운 것이 주루룩 엉켜 쏟아진다.


네가 내 옆에 없구나.

너를 잃었구나.

눈물은 말랐다. 말랐으니, 갈라지는 수밖에...

이대로 그저 그냥 뚝. 끊어질 듯하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간다.

-중략-

그런데 또 이즈막하여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하략-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사랑을 잃었고, 삶을 잃었다.

끝나지 않을 듯한 가난한 마음이 우리를 외로움, 쓸쓸함으로 이끈다.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

누구나 그런 순간들이 있다.

이 순간을 버티는 힘은 우리들 내면에 있다.

자기 연민.



버틸 수 있다. 아니, 버텨야한다.

내게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여야지.

그래야만이 비로소 내일을 기다릴 수 있다.

그렇게 산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진다.

또다시 넘치는 사랑과, 넘치는 슬픔 속에 살아간다.

숙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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