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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Aug 05. 2024

소소한 일상(16)

내리사랑 & 홀로 서기

 “내가 좀 몸이 안 좋다….”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어머니 목소리가 영 힘이 없다. 아들한테는 아프다 소리를 잘하시면서도 며느리인 내게는 언제나 괜찮다, 건강하다고 하시던 분이었다.

작년 치매 초기 진단을 받은 이후 늘 조심스러웠는데 올여름은 유독 덥기도 하고 신경이 쓰여 남편과 하루 짬을 내어 경주로 갔다. 신경주역에서 햇볕이 피부에 스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앗, 따가!” 소리가 났다. 현재 기온 37도!

 우리가 간다고 하면 데이케어센터도 안 가시고 뭔가 음식을 하실까 봐 예고도 없이 센터로 갔다. 기차역에서 미리 연락을 받았던 센터 직원이 어머니를 모시고 나왔다. 우리와 눈이 마주친 순간 어머니 눈에서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우리도, 센터 직원도 당황했다. 우리에게 한달음에 다가오시며 내 손을 꼭 잡으셨다.

 “어떻게 왔냐, 바쁜데…”

 말씀은 그렇지만 얼굴엔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했다.

 맛있는 걸 사드리겠노라 했더니 집 앞 중국집에 가자고 하셨다. 혼자 드시러 가기가 좀 그래서 안 가셨노라며.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휴가였다. 다른 데로 가기엔 날이 너무 뜨거웠다. 어머니가 평소에 좋아하시던 가락국수와 돈가스를 배달시켜 먹기로 하고 집에 들어왔다. 내가 더위에 취약한 걸 아는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에어컨부터 틀었다. 하지만 배달음식이 오도록 에어컨은 작동하지 않았다. 어머닌 평소에 선풍기도 잘 안 틀었고 에어컨은 올여름 처음이라 고장 났나 보다 하셨다. 이 더위에! 서비스센터는 전화번호만 남기라고 했다. 우린 땀을 흘리며 점심을 먹었다.

 지난주는 힘들었지만 이번 주는 좋아졌다며 점심을 맛있게 드셨다. 지난주의 어머니 목소리와 사뭇 다르게 힘이 있었다. 우리 나이로 88세! 십여 년 전 아버님 돌아가시고 씩씩하게 혼자 살아오신 어머니도 이젠 기운이 빠지시나 보다. 양쪽 부모님 중에 어머니만 남았다. 다른 세 분은 병으로 힘들게 삶을 마감하셨기에 난 어머니가 편안하게 돌아가시길 기도하고 있었다. 결혼 전에 엄마가 돌아가시기도 했지만 나를 살뜰히 챙겨 주셔서 늘 감사했다. 이대로 집에 있으면 더위 먹을 것 같아 시원한 카페로 모시고 갔다. 일부러 젊은이들에게 핫한 황리단길로 갔다. 기분이 좋으신지 차도, 디저트도 잘 드셨다. 감자의 여자 친구 사진도 보여 드리고 사진도 찍어 드렸다.

 뜨거운 시간을 넘겨 집으로 돌아오며 건전지를 샀다. 혹시나 싶어 에어컨 리모컨의 건전지를 갈아 끼웠더니 에어컨이 작동한다. 만세! 물론 우리가 서울로 돌아가면 에어컨은 다시 틀지 않으시겠지만! 내친김에 TV리모컨 건전지도 바꾸고 새 샴푸와 바디 워시에 큰 글씨로 용도를 써 놓았다. 욕조 배수구에 쌓인 먼지도 걷어내고 휴지며 각종 생필품을 주문했다. 냉동실도 치우고 싶었지만 내가 손대는 걸 내켜하시지 않았다.

 늦은 점심을 먹어 아직 저녁 생각이 없으시다길래 배달 주문을 넣고 집을 나왔다. 위를 올려다보니 어머니가 7층에서 손을 흔들며 내다보고 계셨다. 저토록 아쉬우실까 싶어 애처로웠다.  멀지 않아 우리에게 닥칠 모습이라 생각하니 어쩐지 서글퍼졌다. 난 워낙 혼자에 익숙했던 사람이라 괜찮을 듯싶은데 남편이 혼자 있는 모습은 상상이 안 된다. 아무래도 홀로 서기 연습을 서로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전에 서로 더 사랑하겠노라고, 후회 없이 더 사랑하겠노라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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