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 그리고 샌드위치
루체른에 숙소를 잡으니 인근 도시에 당일치기가 가능했다. 물론 미리 계산해 둔 거긴 했다. 우리 모녀는 대단히 부지런해져서 새벽같이 일어나 기차역으로 향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베른! 그리고 가능하면 취리히도!
유럽의 대도시 기차역은 어쩐지 비슷비슷하게 보인다, 다만 청결도가 다를 뿐. 가장 빠른 베른행 기차에 올랐는데 2층 기차였다. 오늘은 짐도 없으니 당연히 2층으로 가야 한다. 베른까지 50분! 가는 내내 눈이 즐겁다. 뼛속까지 도시녀인 우리에게 스위스의 자연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대로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까지 머물고 싶었다.
베른에 도착하자마자 장미정원으로 향했다. 이름과 달리 장미는 많지 않았다. 계절이 안 맞았던 탓이리라. 6월 1일이었는데도 햇볕이 뜨거웠다. 그리고 장미정원 곳곳에 언덕이 있었다. 우린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구석구석까지 눈에 담아 놓으리라.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콩알이는 달랐다. 눈에 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사진을 찍어 댔다. 인생샷을 건져야 한다며.
‘살면서 몇 번이나 저 사진을 볼까?’
아이들 어릴 때 그렇게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실상 1년에 한 번 꺼내볼까 말까 한 나로서는 그저 부질없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나고 콩알이는 콩알이니까.
그런데 화살이 내게 돌아왔다. 셀카의 한계 때문인지 마음에 드는 곳이 보이면 내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날은 덥고 눈은 잘 안 보이는 최악의 상황에서 열심히 찍어 줬건만 돌아오는 건 따끔한 타박이었다. 나는 억울했지만 최선을 다했다.
“엄마, 쪼금 기술이 늘었네!”
콩알이의 한마디에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조금은 펴졌다.
장미정원 가까이에 곰 공원이 있었다. “꽃보다 할배”에 나왔던 그 공원이었다. 나무 사이에 누워 잠자고 있는 곰이 내려다 보였다. 쇠창살에 갇힌 곰이 아니라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더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햇볕이 너무 뜨겁다. 우린 서둘러 다리를 건너 구시가지를 향했다. 어느새 버스보다 걷는 게 더 편해졌다.
새벽같이 일어나 빵만 조금 먹고 나왔더니 12시도 되기 전에 배가 고팠다. 콩알이도 그렇다고 했다. 식당은 가격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크람가세를 따라 걷다가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샌드위치 가게를 발견했다.
“엄마, 여기서 살까?”
“그래, 샌드위치가 다 거기서 거기지!”
우리도 줄을 서서 샌드위치를 샀다. 거리에 그늘진 벤치를 찾아 앉았다. 한 입 깨무는 순간 우린 말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겉바속촉의 바게트만으로도 이미 게임 끝이었다. 배가 고팠다는 걸 감안해도 이건 맛있는 거였다. 속재료는 사장(?)님이 추천한 치즈+토마토+야채+갈릭소스+마요네즈 등등이 들어갔다. 감동의 눈빛을 교환한 우린 조금도 남김없이 다 먹어 치웠다(둘이 1인분을 먹는 모녀에게 이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콩알이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엄마, 여기 맛집이었어!”
구글맵에 높은 평점(4.9)이 보였다. 가게(Holly Food) 쪽을 보니 아까보다 줄이 훨씬 더 길었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지!!
배가 부르니 그제서야 크람가세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다. 유럽에서 가장 긴 아케이드가 있는 상점 거리라더니 정말 그랬다. 오래된 건물들의 지붕이 이어진 덕분에 구경하기도 수월했다. 헌책방도, 빈티지 소품샵도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없었다. 단 하나, 화장실 빼고!(이건 유럽 대부분의 문제이긴 하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겐 돈 내고 화장실을 써야 한다는 게 몹시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