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니 Jun 04. 2020

세월호와 흑인 시위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

다른 이의 슬픔에 동참하는 것

1.

2014년 5월 혹은 6월이었다.

그러니까, 세월호 시위가 슬슬 정치적인 색깔을 띄기 시작했을 때라는 말이다.


나는 광화문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다였다.

학교 도서관에서 무력하게 뉴스를 기다리며 질질 짜느니, 거리에 나와서 소리라도 지르는 것.

혼자 우는 것보다 모여서 울면 하나의 여론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그 전까지 나는-자랑은 아니지만-그렇게 정치에 관심이 많지 않았다. 내가 꼽는 사건이라곤 IMF와, 김대중 전대통령이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역사적인 해에 동시에 대통령이 되었다는 동질감 정도.


아직도 광화문에 가면 그 때 그 시위가 떠오른다. 남의 비극을 추억하는 건 아니다. 그냥, 내가 그 때처럼 다른 이의 슬픔에 온전히 동참한 적이 있던가. 그마저도 너무나 미세한 공감일 뿐이었지만.


친구는 학보사 일 때문에 조금 늦는다고 했다.

집회 시간은 저녁 7시. 어쩔 수 없이 먼저 참여해야 되나. 한 번도 집회에 참여해 본 적 없는 나는 조금 겁이 났다. 차마 무리 안에 끼어서 앉지는 못하고 행인인 척 곁다리에 껴서 집회를 바라보기로 했다. 나 빼고 모두가 자신의 신념에 확신이 있는 사람들일까? 주위를 돌아보니 '박근혜 OUT'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음, 근데 저건 좀 오바 아닌가? 지금 애들이 바다에 실종됐는데 이 촌각에 대통령을 끌어내린다고?

한쪽에는 '이석기 석방'이라고 쓰여있는 부스가 보였다.

뭐지? 원래 집회는 이런건가?


친구에게 어디냐고 메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다.

광장 무대에서 집회가 시작되었다.

초대가수가 나와서 사라진 아이들을 찾더니, 슬픈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에게 눈물을 호소한다.

그리고는 유족 중 한 분이 나와서 분노에 차올라 정부를 비판하는 연설을 한다.

뭔가 이상하다.

내가 상상한 집회는 뭐랄까, 조금 더 이성적이고 중립적일 줄 알았다. 객관적이고 간결하게 상황을 요약하고 정부에 의견을 제시할 줄 알았던 거다.

그 때의 나는 '정치'라는 개념과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을 알지 못했고, 사람이 모이는 집회나 시위의 기능을 알지 못했다.

유족의 연설이 끝나자, 사회자가 나와서 참여자들에게 구호를 외치게 한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아니, 세월호 사고를 수습하기 위한 방법이 대통령 하야라고? 납득이 가질 않았다.

세월호 인양이나 구조대 추가 투입 같은 얘기를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이에 반대되는 주장이라도 괜찮았다. 정말 그게 이 비극적인 인재를 수습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거라면.

대통령이 하야하고, 새로운 대통령을 뽑고, 누군가 그 사이에 권한 대행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지금 이 순간 어쩌면, 정말 어쩌면 몇 명은 기적적으로 배 안에서 버티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무도 아이들의 실종과 생존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여기는 세월호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박근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았다.

저 무대 위에서 주최자들과 함께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세월호 유족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저분은 정말 이게 답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이제 끝나서 학교에서 출발하겠다고. 혜화동에서 광화문까지 오려면 30분 남짓은 걸릴 것이다. 시위대는 청와대로 행진을 시작했다.

나는 혜화 방향까지만 행진을 따라가다가, 친구를 만나 한 프렌차이즈 카페에서 엉엉 울었다.

그 이후로 나는 세월호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2.

이제는 더이상 누군가의 비극이 온전히 다가오지 않는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고 세상에는 온전한 피해자도, 온전한 가해자도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지금 미국에 흑인 차별에 대한 시위가 일고 있지만, 흑인이 폭력을 행사하고 약탈하는 아시안과 히스패닉이 떠올라 함께 동조하고 슬퍼하기가 어렵다.

그들이 '온전한 피해자'가 아니라고 해서 차별받은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닌데도.


어쩌면 나도 모르게 '피해자다움'을 상상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세월호 유족들이라면, 정치적인 목소리보다는 온전히 슬픔에만 빠져있을거야,

인종차별 피해자라면, 다른 인종에게도 똑같이 억눌리고 가여운 모습을 하고 있을거야'

상상했던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라고 해서, 심지어 나에게 또 다른 피해를 입힌다고 해도 그가 피해를 입었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생각한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나는 그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마저 부정하지는 않기로 한다.


3.

하지만 이제는 6년 전 그 날처럼 누군가의 비극에 눈물이 나지는 않는다.

'내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결국 내가 그 때 세월호의 비극에 감정적으로 동참할 수 있었던 건, 순수하거나 공감 능력이 뛰어나서 그랬던 게 아니라 나의 일이 될 수도 있었다는 공포 때문이 아니었을까.

결국 나도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를 느끼는 순간이 오면, 지금보다 훨씬 간절하게 Blacklivesmatter와 Blackouttuesday를 외치게 되겠지.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무언가.

지금 당장 차별의 상황에 놓여있지 않으니 나는 제 3자일 뿐이라는 선긋기인가,

직접 겪어야만 깨닫는다는 나의 어리석음에 대한 고백인가.

작가의 이전글 그의 승차권이 유효하지 않게 되었을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