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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Aug 08. 2020

6년 만에 돌아온 송파

나는 송파에서 나고 자랐고, 성인이 된 후 송파를 떠나 거의 1년에 1~2번은 거처를 옮겨다녔다. 그 중에 당연히 (이제는 송파가 아닌) 본가도 껴있고. 본가를 환승구간 삼아 10여 개의 공간에 나의 둥지를 짧게짧게 텄다.


지금은 다시 송파에 살고있다. 이 집으로 이사를 왔을 때, 나는 그렇게 돌아오고 싶어했던 송파임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우울감에 시달려야했는데,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체 언제쯤 정착할 수 있을까'에 대한 막막함 때문이었다.


나고 자란 송파로 돌아오면 금의환향하여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감격스러울 줄 알았는데, 변화한 지역만큼(라떼는 송리단길 이런거 없었어!) 내 자신도 너무나 변해버려서, 어린 시절 완벽하게만 느껴졌던 이 동네가 더이상 이상적이지만은 않은 것이다. 마치 간절히 그리워해오던 어린 시절의 단골 식당을 다시 찾아가 기대감을 가득 안고 한 입 딱 먹었는데 '어, 이 맛이 아닌데?' 하는 기분이랄까.


역시 여행을 다니고 이사를 다니면서 느끼는거지만, 낭만이 있는 곳에는 절대로 둥지를 틀면 안된다.

그 순간 내 마음 속에 있었던 아름다운 낭만은 소름돋게 현실적인 삶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실망감으로 인한 공허함이 또 다른 낭만으로 채워진다면 다행이지만, 하나 둘 사라져버린 낭만이 더 이상 새로운 낭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나는 더이상 꿈이 없는 어른이 되어버리는 걸까.


-

송파를 떠난 건 대학생이 되고 자취를 시작한 21살부터였고, 23살에는 본가마저 강동으로 이사하면서 완전히 연이 끊어져버렸다. 당시의 나는 그걸 받아들이는게 힘들었다. 나의 초중고교, 학원, 독서실, 친구들, (전남친), 그들과 갔던 단골가게와 공원, 골목길 하나하나가 내 삶이었는데. 이제는 그 산소같던 것들을 누리려면 의도적으로 시간을 내고, 이동을 해야된다니. 더 좋은 집으로 가는 것이었는데도 절대로 가기 싫다며, 당시 23살이었던 나는 13살처럼 엉엉 울며 저항했지만 결국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알이 강제로 깨지는 순간이었다. 강동이라는 세계는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낯설었으며,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학교 근처에서의 자취를 고수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고 여겼으므로.

그렇게 송파를 떠나오며 나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송파에 집 한채 마련하겠노라, 근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으니 노후에 송파에 입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나 - 송리단길이니, 롯데타워니 하는 나의 추억과는 하등 상관없는 것들이 자꾸 생기는 바람에 송파 재진입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해버렸다.


그러고 나서 6년 후, 삶은 또 한 번 의도치 않게 흘러갔고, 나는 어찌어찌 송파로 돌아왔다.

아아-정말 삶이란 알 수가 없다. 내 인생에 다시 송파에 살 수 있을 날은 오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원하고 원망했던 송파였는데, 송파를 떠나 이곳 저곳을 배회하는 동안 나 자신도 너무 많이 바뀌어 버렸는지 어린 시절만큼 이곳이 마냥 완벽하지가 않다. 아무래도 학생과 직장인의 생활 차이도 있겠지.

또 다른 이유.

어린 시절의 나는 자아가 너무 강해서, 외부의 소리 보다는 내면의 소리가 더 컸던 아이였다. 지금은 내면의 소리에는 거의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온통 외부의 세계에만 관심이 쏠려있다. 이제야 비로소 주변을 둘러보니, '아- 송파에도 이런 (단)점이 있었구나'하는 것들이 보인다.


내가 기억하는 송파는 올림픽 공원, 성내천, 잠실, 그리고 적당히 가정적인 분위기의 오금동 골목들이었는데,

지금와서 다시보니 잠실여고 주변은 2000년대가 떠오를만큼 낡았고, 지금 내가 사는 동네 역시 술집과 주거 공간이 마구 뒤섞여있다.

대학생 때는 카페가 24시 영업인게 너무나 당연했는데, 이 곳에서는 밤 11시까지 하는 카페를 찾는 것조차 어렵다(아아, 내가 문제인걸까!). 무엇보다 이제 나는 주거지역을 누릴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없다. 전에는 굳이 산책로를 정하지 않더라도 일단 걸으며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는데(MP3, 칼국수 이어폰 필수) 이제는 산책은 커녕 밤 늦게 들어와서 쓰러지듯 자고, 헐레벌떡 나가기 바쁘다. 휴일에는 다른 '핫플레이스'를 찾아 떠난다. 동네에서 시간을 보낸다는건 정말이지, 23살 이후로 내게서 사라진 개념이 되어버렸다. 그게 이 곳에 이사오고도 바뀌진 않는다. 6년의 시간은 나의 라이프스타일과 기준을 완전히 바꿔버리기에 충분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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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렸을 때 다니던 길을 지나갈 때면 나는 타인이 되어 그 때의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반대로 그 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렇게 만족스러워할 것 같지는 않다. 그 때의 나는 (진심으로)세계 평화를 꿈꾸던 아이였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나를 부정할 순 없다. 나는 이렇게 되어버렸다. 좋든 싫든. 이제는 이 자리에서 또 다른 시간과 삶을 펼쳐가야한다. 어린 시절의 낭만과 추억이 담겨있던 송파의 골목골목은 다시 한 번 나의 29살 삶의 한 조각을 담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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