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애환

독한PD 에세이

by 독한PD

2020년 1월 21일



방송 프로그램 제작 PD로 살아온 지 올해 13년째. 그동안 ‘PD’라는 직업으로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아시아부터 아프리카까지 많은 곳을 다녔다. 많은 곳을 누비며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것이 이 직업의 매력이다. 하지만 모든 직업이 애환(슬픔과 기쁨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 있듯이 내 직업도 많은 애환이 있다. 오래전 <EBS 극한직업>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촬영하며 출연자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본인들을 촬영하는 PD가 ‘극한직업’이라고 말이다.


촬영 현장은 어떤 프로그램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연출한다면 출연자들이 토크하는 형식으로 녹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PD들이 고된 노동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으나, 다큐멘터리나 교양 정보 프로그램은 아이템에 따라 현장이 늘 달라지기 때문에 고된 노동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EBS 극한직업> 프로그램의 경우 촬영하는 아이템에 따라 촬영이 짧게는 1주일 길게는 10일 이상 촬영하기도 한다. 전에 <갈치잡이> 아이템을 촬영하기 위해 어부들과 배에서 5일 정도 같이 생활한 적이 있다.



멀미의 고통을 이겨내고 어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기 위해서는 굉장한 체력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들의 삶에서 의미 있는 인터뷰를 담기 위해서는 많이 친해져야 가능하다. 친해지기 위해서는 이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촬영을 하지 않을 때 일을 돕기도 하고 이들의 밥상머리에 식사를 같이 하며 관찰하고 온몸으로 이들의 삶을 느껴야 인터뷰할 질문들이 하나 둘 생겨난다.



이렇게 무사히 촬영이 끝나면 긴 편집 작업이 시작된다. 편집은 무척 외로운 작업이다. 하루 종일 컴퓨터만 보고 있기 때문에 인공 눈물은 필수다. 그리고 요즘에 손목이 시큰한 게 아파서 손목 건강을 지키기 위해 버티컬 마우스를 구입했다. '손목 터널 증후군'이라 불리는데 손바닥과 손목의 연결 부위인 신경이 눌려 손목에 통증을 느끼는 증상이다. 주로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사무직이나 주부에게 흔히 발생한다.


어디 그뿐일까? 편집 작업하느라 야근을 엄청 한다. 어깨와 목은 늘 뻐근하고 운동 부족으로 몸은 점점 무거워진다. 지금도 많은 PD들이 편집실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수많은 시간들의 합으로 방송 프로그램들이 태어난다. 정해진 편성 시간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잠시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다. 방송이 나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힘든 시간을 보상받는 시간은 내가 제작한 프로그램이 TV로 방송 나가는 걸 보며 마음 편히 시원하게 맥주 한잔 들이켤 때다. 오늘도 무사히 방송이 나갔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내가 살아있음을 그제야 느껴본다.



"또 한편이 끝났구나"



중학교 때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고 고등학교 때는 문예부 서클 활동하며 시를 썼다. 무엇인가를 창작해서 누군가에 보여주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19살 장래희망으로 택한 ‘PD’라는 직업이 이제는 내 삶의 반이 되었다. 힘들고 고된 직업이지만 내가 꼭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내가 제작하는 영상에 출연하는 출연자를 사랑하는 것. 그 마음이야말로 내가 이 직업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꼭 지켜야 하는 마음가짐이다. 왜냐하면 내가 진정성 있게 촬영하며 취재하고 사랑한 만큼 프로그램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PD의 마음이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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