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2년 째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로 일하고 있다. 'PD' 라는 직업으로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비롯 세계 많은 나라를 '촬영'이란 이름으로 출장을 다녔다. 25살 때 조연출 시절에는 촬영가는 게 매번 즐거웠다. 하늘 같은 선배PD와 같이 가는 촬영이라 긴장은 됐지만 늘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설레였던 기억이 난다. 선배PD가 열심히 촬영하는 걸 뒤에서 보면서 일반 회사원 친구들은 느끼지 못할 법한 현장에서 일하는 게 굉장히 큰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PD'라 불리는 사람들은 아마도 역마살이 끼었을 것이다. 역마살[驛馬煞]이란 한자어 역마驛馬와 살煞이 합쳐진 단어라고 하는데 한곳에 붙어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사람에게 우리는 흔히 역마살이 끼었다고 한다. 여행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는 우리나라를 비롯 전세계를 누비고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는 우리나라 곳곳에 벌어지는 어두운 뒷면을 취재하며 고발하기도 한다. 휴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PD는 주인공의 삶을 돋보기 보듯 가까이서 지켜보고 들여다보기도 한다.
밑에 글은 2013년 12월에 내 페이스북에 남겼던 글이다.
[2013년 올해 마지막 지방 출장이다.. 낯선 곳에서의 숙박과 이 많은 짐들은 이제 익숙하다.. 혼자서 낯선 식당에서 밥 먹는 일도, 이곳의 낯선 누군가와 말 거는 법도, 낯선 곳에서 외로움을 이겨내는 법도 이제는 괜찮다.. 내 삶의 일상이 돼버린... ]
당시 <EBS 극한직업>이라는 프로그램을 연출했었는데 일주일 동안 같이 촬영한 후배를 먼저 서울로 올려 보내고 홀로 남아 며칠을 더 촬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썼던 글은 모텔방에 홀로 있으며 느꼈던 감정을 남긴 글이다.
위 사진을 보면 출장 갈 때 가방이 여러 개다. 짧게는 일주일, 길면 열흘이 넘게 있어야 하기에 캐리어는 필수다. 카메라 장비 가방도 2~3개는 기본 매일 촬영된 촬영본 파일을 외장하드로 옮겨야 하기에 노트북도 가져간다. 그래야 시간을 절약해서 서울로 올라가서 바로 편집 작업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숙소에 들어와서도 촬영 파일을 정리하느라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니다.
그로부터 6년 뒤 2019년 12월.
나의 출장 인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오늘은 새벽 6시에 연출팀 PD들과 강원도 태백으로 향했다. 지금 제작에 들어가는 프로그램은 스텝만 50명 이상이 넘는 어린이 축구 예능 프로그램이다.
내일 첫 녹화라 오늘 하루 종일 춥고 피곤했지만 나는 이 살아있는 현장을 사랑한다. 내가 PD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내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