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도 프리랜서가 있나요?

독한PD 에세이

by 독한PD

나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 PD로 13년째 일을 하고 있다. 현재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다. 과거에 촬영하던 중 누가 물었었다.


'PD도 프리랜서가 있나요?'


그렇다. PD 직업도 프리랜서가 있다. 아니 많다. 제작사에서는 PD들을 4대 보험 되는 직원을 잘 두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제작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거나 사정상 폐지하게 됐다고 가정해보자. 폐지된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PD나 작가를 제작사에서 책임져주며 매달 월급을 줄 수 있겠는가? 구조상 힘들다. 그래서 PD와 작가는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인다.


나는 13년 동안 방송 제작 일을 해오면서 4대 보험에 가입된 정규직으로 일해본 것은 6개월이 전부다. 2007년 조연출 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개의 제작사를 거쳤지만 늘 급여에서 3.3프로 원천징수를 했다. 어렸을 때 그렇게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이었다. 밥상머리에서 아버지가 물었다.


"너네 회사는 4대 보험도 안 해준다니?"

"그런 거 없는 것 같아요"

"세상에 그런 회사가 어딨다니? 너 그러다 촬영하다가 다치면 회사에서 책임져준다니?"


아버지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동안 'PD'라는 이름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프리카부터 가까운 동남아시아까지. 그리고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이나 남들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며 취재하고 촬영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늘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변수를 가지고 출장을 간다. 나 자신 스스로가 조심할 수밖에는 없었다. 지금까지 무사히 다치치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난 2월 프리랜서 PD로 청주 방송국에서 14년간 근무한 고 이재학 PD는 아파트 지하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임금인상 문제 등으로 사측과 갈등을 겪다가 해고된 뒤 법정 다툼을 벌여왔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고 한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것이 없다. 억울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14년 간 한 방송국에서 일하며 한 달에 받은 급여가 200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적은 임금으로 많은 시간의 노동을 하며 어떻게 14년을 버텨왔을까? 고인과 나는 비슷한 또래 나이에 비슷한 방송 연차였기에 더 가슴이 아팠다. 비정규직 그리고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기본적인 노동권 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이 지금의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심지어 프리랜서는 대출도 어렵다.


프리랜서나 비정규직 PD는 프로그램을 찍어내는 기계가 아니다. 한번 써보다가 탈이 나버리면 버리는 기계 또한 아니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열정과 그리고 프로그램을 사랑하는 마음은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다 같은 마음이다. 프리랜서라고 해서 절대 프로그램을 잘 만들지 못하는 것 또한 아니다. 프리랜서 PD이기에 가질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이 잘 나오려면 만드는 사람이 건강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프로그램이 나온다. 건강한 프로그램이 나와야 시청자들에게도 건강한 메시지를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앞으로 프리랜서 PD로 계속 살아야 한다면?


나는 후배 PD들에게 프로그램만을 위해서 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프로그램만 보고 살아간다면 어느새 번아웃이 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나 역시도 방송 10년 차 때 번아웃 증후군으로 좋아하던 방송 일이 꼴도 보기 싫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내 몸과 정신이 방전이 돼서야 나에게 처음으로 '휴식'을 주었다. 10년 만에 45일의 해외여행을 선물로 준 것이다. 그리고 45일 중 34일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나를 회복시켰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반드시 자신에게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여행이든 독서든 나만의 방식으로 다시 에너지를 채워야 한다. 그래야 채워진 에너지로 다시 다음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래서 휴식도 중요하다.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 PD가 프로그램 만드느라 바쁜데 왠 자기 계발이냐고? 프로그램을 잘 만들려면 프로그램만 죽어라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독서를 통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또는 인문학이나 철학을 통해 나 스스로 내면을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 그리고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유튜브나 블로그로 확장시켜야 한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으로 강의를 통해 누군가를 가르칠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동안 프로그램을 힘들게 제작해야만 수익을 얻었다면 다른 경로로 수익이 나올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야 한다. 나 또한 지금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힘들다. 본업과 같이 하니 말이다. 하지만 나이는 먹어가고. 5년 뒤 하겠는가? 10년 뒤 하겠는가? 어차피 해야 한다면 지금 당장 조금씩 준비하는 것이 좋다. 나만의 무기를 여러 개 만들어 놓는다면 프로그램으로 지쳤을 때 잠시 다른 쪽에서 수입을 얻어가며 에너지를 채울 수 있지 않겠는가?


프리랜서 PD로 살려면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 독해야 한다. 더 강해져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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